[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지난 100년의 과오를 바로잡는 길이 우리가 앞으로 100년을 살아갈 이정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100년의 과오가 무엇인가. 당연히 시대의 모순이다. 그러면 시대의 모순이 무엇인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우리들을 암울하게 억눌러왔던 그 모든 것들이다. 특정한 단어 한두개로 한정시킬 수 없는 억울하고 분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의 해결을 위해 촛불을 들었고,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있을 때 추동력이 생긴다. 8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을 때 밀어붙였어야 했다. 미적거리는 사이 2년의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새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세가 부족해서? 바로 그렇다. 단언컨대, 탄핵 세력과 함께 갈 수 있었다면 한결 쉬웠을 길이었다. 새 시대의 도래를 보고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을 때, 60명 이상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들과 야권 세력을 모아 과감히 촛불연대를 꾸려 나갔더라면 지금과 같이 지리멸렬했을까? 그때 국민의 힘으로 밀어붙였으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했을까.

Ⓒ청와대

지금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표독스러워졌다. 이는 문재인 정권이 자초한 결과다. 시대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 꿈을 열어달라고 촛불을 밝혀 주었더니 무엇 하나 해결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실망한 나머지 하나둘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순혈주의 오만이 자초한 결과라고 본다. 자기들끼리 개혁을 밀어붙여도 된다는 배타적·폐쇄적 태도가 개혁입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방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당연하다. 그들의 뿌리가 어떤 세력인가. 해방 이후 70년 체제를 지배해온 거칠고 잔혹한 집단이다.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류하는 힘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성이다. 반대파를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사형으로 내모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주적인 북한에게 총격을 가해달라고 부탁한 세력이다. 보수주의가 갖는 따뜻한 관용과 아량의 정신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수주의가 가장 강조하는 준법정신도 그들 스스로 패대기쳤다. 외세에 빌붙고 독재에 부역하며 탐욕을 채웠다. 그럼에도 보수정권이라고 자처한다. 염치없는 오만이 극치다. 권력과 자본과 인사권을 독점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런 보수 세력이 정권을 하루 아침에 빼앗겼다. 금단현상에 빠질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동안 정신줄 놓았다가 문 정권이 주춤하는 사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옛 관성의 무기를 들고 공격하고 있다. 한국 우파의 특징 중 하나가 언행불일치와 억지와 독선과 ‘아무말대잔치‘다.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것이 노골화하고 있다. ‘문재인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반민특위는 국민분열’, ‘5.18 북한군 600명 침투설’, ‘문재인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인가’ ‘좌파 독재’ 따위 등등 상상도 못할 난폭한 언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확성기를 타고 울려퍼지고 있다. 팩트에 맞든 안맞든 내질러놓고 본다.

여기에 보수 언론이 지원 사격을 해주고 있다. 전선을 확장해주면서 문재인 정부 공격의 선봉에 서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이 더 잘 알 것이다. 가치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으로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에 끼어들어 이익과 결부시켜 논조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보수 매체가 지금 문재인 정권에게 퍼붓는 것과 같은 날세운 비판과 감시의 눈 반의 반만이라도 ‘이명박근혜 정권’에 지면을 할애했다면 과연 이명박 박근혜가 감옥에 갈 일이 있었을까? 그만큼 정론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에서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이 덜미를 잡히고 있다. “문재인 저딴 게”라는 모욕적인 레토릭이 남발되는 표현자유 시대인데도, ‘김정은 수석대변인’ 기사를 쓴 외신기자를 향해 비난 성명을 냈다가 '외신구락부'로부터 표현과 언론자유 침해라는 비판을 되받았다. 이런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너무 허술하다. 사소한 에러(error)도 가차없이 물고 늘어지는 언론환경을 지나치는 것같다.

정치의 성공과 실패는 거대한 담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샐로판지처럼 가벼운 세태에 조응하는 디테일한 이미지 관리가 실패냐, 성공이냐의 척도가 되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 노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갈 길이 멀지 않는가. 이명박 박근혜는 실수를 미화까지 해주는데 나는 왜 사사건건 멱살잡나? 하고 푸념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

2017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전쟁공포 속에 살았다. 눈만 뜨면 어떤 불안감 속에 늘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나날의 일상이 우울했다. 그런데 남북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연히 마음 평온해지고,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대륙의 꿈도 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외세가 막고, 내부의 반대파들이 다리 걸어 자빠뜨리려 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 단서를 달지만 그것은 대화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완전한 비핵화가 지난한 길이라는 걸 보수세력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 자동차 등 전통적 굴뚝산업이 무너지면서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고, 고용없는 성장으로 인한 경제산업구조의 재편, 부의 편재가 심화하고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한 대 중국 수출의 저조와 세계 경제의 변화도 있다. 한국의 경제침체는 어제 오늘에 비롯된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탓만은 아니다. 그래서 융단폭격을 퍼붓는 언론과 야당이 야속할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국민은 능력부족을 이야기한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해당 부처에 아이디어를 주고, 국민 설득 방안을 강구하는 대책이 없는가. 개선의 구체적 콘텐츠와 미래 비전을 제공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기구를 작동할 수는 없는가.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홍보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져보인다. 조건반사적 대응 외엔 대책이 없는 듯이 보인다. 대국민, 대언론, 대사회 홍보정책은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 때문에 오만을 키웠다고 본다. 순혈주의 동종 교배만으로도 개혁이 가능하다고 과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세력 싸움이다. 세에서 밀리면 어떤 고상한 정책도 용도폐기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수 수구 세력들이 악착스럽고 잔혹한 것은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고등계 경찰문화, 해방 이후의 우익 테러문화, 5.16 이후 군사독재 문화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세력이다. 권력의 맛, 돈의 맛을 아는데 뒷전에 얌전히 물러앉아 있겠는가. 권력을 잃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았을 것이다. 실수만 나오기를 기대하고, 없는 기회도 만들어 역공을 퍼붓고, 그렇게 해서 지금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다.

이런 때 자기들만이 순결하고 자기들만이 해낼 수 있다는 타성에 젖은 과신은 사태를 그르치고 말 것이다. 혈통주의에 빠져서 ‘너는 되고 너는 안된다’라는 분열의 이분법적 재단은 통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고다. 탄핵을 지지한 제 세력을 결집하기 바란다. 하자고 하면 지금도 늦지 않다. 내 지분 좀 뺏기면 어떤가. 권력을 선의로 나눌 때 더 큰 도량으로 보이고, 거버넌스를 실천한다는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덕목으로 비친다.

야당 출신이라도 능력있는 테크노크라트를 과감히 데려다 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를 통해 적폐를 청산한다. 차도살인은 중국 병법 중에서도 유용한 전술이다. 한신은 동네 깡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어도 그의 도량을 높이 샀지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들어 가서라도 천하의 인물을 모으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개혁 세력이 실력’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바란다. 확장성도 확실히 담보될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공수신퇴(功遂身退)’를 역설했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뜻이다. 정권 창출했다고 공을 독식하는 구조는 나라 재구성의 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의 길이다. 거기에 무슨 진영이 필요한가. 닫힌 진영논리는 스스로를 가둔다. 촛불혁명의 깃발을 나부껴보았자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면 반동의 역사가 올 것이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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