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청년칼럼=시언] 소개팅 당일은 이상한 날입니다. 상대의 직업 같은 인적사항과 사진까지 확인했고, 주선자로부터 '진짜 괜찮은 애라니까'라는 확답을 열한번째쯤 들었음에도 당일만 되면 밀려오는 부담감에 소개팅이고 뭐고 엎어버리고 싶어지죠. '자만추(자연스런 만남 추구)인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싶은 자괴감과 '나 너무 궁해 보이려나' 싶은 걱정도 당신의 예민한 신경을 긁습니다. 그럼에도 만남 장소로 나서는 당신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염려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무슨 얘길 해야 안 어색할까?'

Ⓒ픽사베이

먼저 인정합시다. 당신이 코미디언 뺨치는 혀를 갖지 않은 이상, 어색함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오늘 초면인 두 사람 사이엔 피상적인 질문과 대답들이 오갈 것이고, 질문과 질문 사이의 공백은 무겁고 불편할 것입니다. 설령 당신이 처음 본 사람의 배꼽을 10분안에 터뜨릴 자신이 있더라도 자중하시길 강권합니다. 당신과 그녀(혹은 그)는 사랑해도 좋은 인연을 찾아 왔지, 원맨쇼를 보러 온 게 아니니까요. 소개팅 첫 만남에서 어색함은 중력과 같습니다. 피할 길이 없죠.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죠. 어색함을 피하기 위한 대화 주제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해야 서로 잘 통할까?'로요. 흔히 사람들은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일종의 천부적 궁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랑 잘 통할 사람이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대화는 자연스럽고 유익할 것이란 착각입니다.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입니다. 좋은 대화는 많은 경우, 쌍방 간의 치열한 노력을 요합니다.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권태기에 빠진 전 애인이 당신과의 대화에 어떻게 임했는지 떠올려 보시길. 처음엔 잘 통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좋은 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는 순간 대화는 지루해질 겁니다.

조금 현실적인 조언을 드려볼까요.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질문을 집중하라'와 '원래 거기 관심 있던 척하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수다스러워 집니다.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같은 질문보단 "저도 유럽 가보고 싶었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상대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겠죠.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남자분들, 다음 질문 생각하시느라 상대의 답을 귓등으로 들으시면 안됩니다. 오디오를 비게 두면 안 된다는 사명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경청하지 않는 태도는 티가 날 뿐더러, 자칫하면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하는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 조언을 활용해 첫 만남에서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면, 그리고 당신도 상대가 마음에 남았다면, 다음 만남을 제안해도 좋습니다. 어차피 그쯤 되면 그녀(혹은 그)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에게 달린 게 아니니까요. 시킨대로 다 했는데 거절이 웬 말이냐고요? 연인을 물색할 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재고 따집니다. 옷에서 나는 향기, 목소리, 눈매는 부드러운지 날카로운지 등등 셀 수 없죠. 대화가 잘 통하냐 여부는 무수한 기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른 기준과의 차이가 있다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호불호를 타지 않는다는 점 정도죠.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조언은 '소개팅 상대를 꼬시는 법'이라기보단 '처음 본 상대와 좀 더 흥미롭게 소통하는 법' 정도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한때 '소개팅 꿀팁' 따위를 미친듯이 검색했던 평범한 남성으로서, 글로라도 사랑을 배우고자 고심하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조금 어색해도, 능숙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맘을 뺐긴 상대 앞에서 바보가 되기 마련인 까닭입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모두가 한번은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바보가 되기 위해 고뇌할 뿐입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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