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청년칼럼=석혜탁] 외항사를 탔을 때의 일이다.

어설프게 잠을 좀 잤을까? 천천히 눈을 뜨고 있는데, 출국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영어로 흘러나왔다.

뒤이어 한국어로도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인 만큼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이를 배려한 조치인 듯싶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픽사베이

“저희 OO항공을 찾아 주신…”과 같은 표현이 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렇게 방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몇몇 좌석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좀 웃고 말겠지 했는데,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발음과 억양을 과장되게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덜떨어진 성대모사를 주고받으며 웃고 있던 것이었다.

오호애재라. 저런 것들을 동포라고 생각해야 하다니.

한국 항공사에 취업한 외국인 승무원도 아니고, 외항사에 소속된 그 해당 국가 직원이 한국어를 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니, 설령 한국 항공사의 외국인 직원이라고 해도, 한국어 발음을 갖고 그런 식으로 조롱하는 것은 너무도 저열한 행위다.

우리라고 뭐 얼마나 영어 발음이 유창할 것이며, 제 2외국어로 안내방송을 할 때 누구나 다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마다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부족한 외국어 억양을 흉내낸다면, 우리는 엄청난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화가 났고 창피했다. 다른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참 갑갑했다.

그때 나의 옆옆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의 입에서 아래와 같은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꼬.”

부연이 필요치 않은, 짧지만 강렬한 문장이었다. 외국인의 외국어 발음을 조롱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어르신의 저 말을 깊이 이해할 줄 아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픽사베이

낯설고 어려웠을 한국어 몇 문장을 최대한 유창하게 발화하기 위해 긴 시간 노력해서 연습했을 그 승무원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또 위의 어르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더 많음을, 당신의 한국어 방송 덕에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사람이 많이 있었음을 알아주길…

 석혜탁

-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저자. 
-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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