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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의 위임과 책임에 대하여[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9.04.03 12:30

[논객칼럼=이영환] 인터넷 시대에 정보기술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대규모 조직에서는 여전히 수직적인 위계구조가 보편적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을 비롯해 정부, 국제기구 및 비영리단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적절한 권한의 위임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아래 장면은 2011년 5월 1일 미국 정부가 <Operation Neptune Spear>작전을 통해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를 시도할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작전 진행을 모니터하고 있던 국가안전위원회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점은 중앙에 앉아서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면서 작전을 지휘하는 공군 장성 옆에 캐주얼 차림으로 앉아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전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중앙에 자리하면서 전체 작전을 주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의 중심에서 직접 진두지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적절한 권한의 위임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위임을 받은 사람이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적절한 인센티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한다.

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사례로 필자가 오래전에 어떤 잡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에 대해 쓴 글이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을 추진하기 직전인 시점이었던 것 같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는 그다지 소원하지 않았었는지 두 분은 새마을호 기차에 동승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차창 밖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볼 때마다 일일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김수환 추기경은 “이 분은 절대 권력을 놓을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시행하려면 계속 권력을 유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3선 개헌을 강행했고, 그것도 모자라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집권을 도모했다. 이후 벌어진 일은 모두 아는 바와 같다. 김 추기경은 짧은 대화를 통해 박 대통령이 적절한 권한 위임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위계구조를 가진 조직에서 적절한 권한 위임은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과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기업, 나아가 정부 조직 전반에 걸쳐 누구나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권한의 위임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와 상장 기업의 구성원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조직에 권한을 위임한 주인(principal)은 대부분 조직 밖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의 경우 국민이 주인이며, 상장기업의 경우 주주들이 주인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조직 내에서 권한의 순차적인 위임은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따라 하향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행정부의 경우 대통령을 정점으로 최하위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권한의 순차적인 위임이 이루어진 후, 이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상장된 대기업의 경우 회장을 정점으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이든, 그룹 회장이든 권한을 위임한 주인과 조직 전체를 위해 기여하려면 적절한 권한의 위임과 인센티브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해 늘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권한의 위임에는 보통 ‘대리 문제(agency problem)’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보통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알려진 문제를 보편화한 것이지만, 도덕적 해이의 의미를 오해하는 경향이 있기에 여기서는 대리 문제라고 칭할 것이다. 이것은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위임한 주인의 이익에 반해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경향을 말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한계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성인군자의 반열에 이르지 못한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만과 위선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권한을 위임한 주인과 조직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려는 충동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버닝썬 사건, 장자연 사건 및 김학의 사건에 관한 각종 미디어의 보도를 접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왜 이와 같이 돈과 권력이 야합한 치졸한 사건들이 그치지 않는지 정말 개탄스럽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지금도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이것이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 기관의 담당자들, 그리고 이를 보도했던 언론 관계자들을 비롯해 관련된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결과 발생한 사건들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안은 이런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없었다면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사건들이 적당히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특별 지시는 적절했던 것 아닌가? 필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앞의 사진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작전 지휘를 맡은 장성의 옆에 앉아 있던 모습을 상기해보자.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든 문제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생각해보자. 전자는 적절한 권한의 위임을 상징하고, 후자는 이를 부정하는 일화에 해당된다.

필자는 우려하는 것은 이번에도 적절한 권한의 위임과 책임을 묻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런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될 것 같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들을 통해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도덕적·윤리적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매듭짓기에는 너무도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권한의 위임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작성되고 이에 따른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화한 인센티브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센티브 시스템은 당근과 채찍 가운데 채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공직자의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뇌물수뢰나 권한남용과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법을 개정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지금도 수면 밑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채찍이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도덕적·윤리적 호소나 계몽도 효과가 없다. 크고 작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웬만한 처벌에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하다. 훗날 자신들이 그런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을 감안할 때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전형적인 대리 문제에 해당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에서 구성원들 대부분은 대리 문제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연하자면 대리 문제임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그나마 어렴풋이 인식하는 사람들조차 조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가 지속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조직의 비효율로 인해 경제발전은 둔화되고, 사회통합은 요원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조직의 수장들이 자신의 책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이것은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에게 절실한 사안이다. 예컨대 원자력발전소 관련 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원전 관련 정책을 국민투표에 회부해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할 처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준하는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객관적이면서 심도있는 논의 없이 서둘러 원전 정책을 변경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제왕적 사고의 발로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이런 태도는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적폐청산의 대상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필자는 과거 국내 굴지의 재벌총수가 개인적인 취미의 연장선상에서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고 결국 실패했던 사건을 언급하고 싶다. 상장 기업들로 구성된 기업집단의 총수는 단순히 개인 소유주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총체적으로 기업경영에 반영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는 공인(公人)이다.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취향이나 편견에 입각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대리 문제에 해당된다. 이런 결정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주들과 이해관계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가가 아님에도 단지 대통령이나 총수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잘 모르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지침을 제공한다거나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는 저서 『The Common Good』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막말이나 돌출 행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미국의 공동선(common good)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있는 문구 때문이 아니라 적법한 권한의 위임과 이에 따른 책임을 묻는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서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다. 관련된 책임자들이 위임받은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다면 이런 사건들 상당부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한바탕 파도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적절한 권한 위임과 이에 따른 당근과 채찍을 강화함으로써 구조적으로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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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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