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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논란으로 만신창이 된 영국…회복 불가능할 듯[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유세진 | 승인 2019.04.04 11:32

[논객칼럼=유세진] 아직 학생이던 40여년 전 대학가에서는 시위가 자주 있었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 중에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길 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40년도 더 지난 옛 얘기를 지금 꺼내는 것은 요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놓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영국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는 영국 하원의 모습이 노래 가사 내용과 겹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영국은 2016년 6월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찬성 51.89%, 반대 48.11%의 근소한 표 차이였다. 이후 지금까지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브렉시트는 애초 지난 3월29일 실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아무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혼란이 극심해질 것을 우려, 연기를 요청했다. EU가 이를 받아들여 브렉시트는 영국 의회가 메이 총리와 EU간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일단 5월22일까지 연장됐다. 그러나 영국 의회가 합의안을 승인하지 않으면 4월12일 브렉시트가 이뤄진다고 EU는 밝혔다. 4월12일까지는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하원은 계속 합의안을 거부하고 있으며 대립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조금도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픽사베이

메이 영국 총리는 1년 반에 가까운 협상 끝에 2018년 11월 EU와 브렉시트 합의안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힘겹게 얻어낸 그녀의 브렉시트안은 영국 의회에서 3차례나 부결됐다. 이는 브렉시트와 관련해 찢길 대로 찢긴 영국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브렉시트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국의 EU 탈퇴에 반대한다. 당시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도 브렉시트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놓고 서로 다른 방안들을 내놓으며 사분오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브렉시트로 인한 부조리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영국은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사실상 브렉시트가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 하원은 아무 합의도 없이 EU로부터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는 어떻게든 막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기업들은 이미 노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성장은 하락하고 있고 영국에의 투자는 감소하고 있으며 상업의 천국이라던 영국의 명성은 쇠퇴하고 있다. 브렉시트가 어떤 결말을 가져오든 영국을 떠난, 그리고 떠나고 있는 일자리와 자금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기 힘들다. 유럽 대륙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영국을 찾았던 다국적 기업들 가운데 275개가 넘는 기업들이 이미 유럽의 다른 나라로 떠났거나 떠나기로 결정했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가운데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계속 하락해 영국 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은행과 보험 등 금융기관들로부터 1조 달러가 넘는 자금이 영국에서 빠져나갔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타협이라곤 조금도 이끌어내지 못하며 3년 가까이 대립만 되풀이하고 있는 영국 하원의 모습은 또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영국의 명성에도 흠집을 냈다. 메이 총리의 집권 보수당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분열돼 권력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실망으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브렉시트와 관련해 분리 독립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여전히 찬반 진영으로 갈라져 자신들의 목소리만을 높일 뿐 상대측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않고 있으며 EU도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며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하고 있다.

영국 하원은 메이 총리가 EU와 체결한 합의안을 대체할 대안 모색을 위한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2차례나 실시했지만 상정된 어떤 안건도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자신의 합의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4번째로 표결에 부치려던 메이 총리는 2일 EU에 또다시 브렉시트 시한 연장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그러나 브렉시트가 5월22일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월23일부터 26일까지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이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메이는 대신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와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집권 보수당 내 강경주의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메이 총리가 코빈의 주장에 대폭 양보하는 대신 야당 노동당의 지지를 통해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노동당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녀를 지지해온 보수당 의원들을 반란으로 내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보수당 의원들이 메이 총리가 코빈 노동당 대표와 대화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10일로 예정된 EU 긴급정상회담까지 불과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 속에 메이 총리와 코빈 노동당 대표가 하원 통과에 충분한 타협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지도 지금으로서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또 타협안이 마련된다 해도 EU가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불투명하다.

브렉시트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지금은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3년 가까이 지속된 브렉시트 추진 과정에서 영국이 입은 타격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영국의 명성은 사라졌고 영국은 분열됐으며 다시 단합을 이루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전체 투표자의 4%가 채 못 되는 차이로 이뤄져 영국을 만신창이로 만든 2016년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다수결의 함정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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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진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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