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

[논객칼럼=김호경] 도끼로 사람을 죽이면 쾌감이 있을 것이다. 붉은 피가 마룻바닥을 적시고 핏방울이 벽에 기이한 추상화를 만드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인다. 그 상대가 추악한 고리대금업자 노파라면 살인이라는 죄의식도 들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그 노파만 죽이려 했는데 우연찮게(정말 재수없게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여동생마저 덤으로 죽인다면 쾌감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삶에게 해를 끼치는 노파가 있어. 그 노파는 자기가 왜 사는지 몰라.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돼. 그런데 도움을 받지 못해 좌절한 젊은이가 있어. 그 사람은 돈이 자기 손에 있다면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도록 인도하고, 가난한 삶들을 도와 행복하게 해주려는 계획을 세웠단 말이야. 그 청년이 노파를 죽였다고 해봐. 작은 범죄 하나로 수천 가지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 청년의 잘못인가?

잘못이 아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누가 나폴레옹에게 살인죄를 물었던가? 나폴레옹은 사상 최대의 살인자인데도(그 당시까지)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존경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킨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비범인(非凡人)이다. 비범인은 세계의 구원과 개혁을 위해 평범인(平凡人)을 죽여도 된다.

케플러나 뉴턴이 자신의 위대한 발견(법칙)을 대중들에게 일깨워줘야 할 때 그것에 장애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을 제거해도 된다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판사 앞에서 주장한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낡은 것들을 파괴해야 할 때 유혈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인 사람이 겨우 이웃집 할머니(한 명은 처녀) 두 명이라는 사실은 너무 초라하다.

고달픈 유형지에서의 유일한 위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외국 작가는 대략 900여 명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뛰어난 작가를 한 사람만 뽑으라면 단연 도스토옙스키다. 3명을 뽑으라면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추가할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읽기 쉽지 않다. 분량이 방대하고, 철학적 내용이 많고, 심리묘사가 어지럽다.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가 이름들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러시아의 역사도 그리 친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권의 소설만은 읽어야 하는데 바로 <죄와 벌>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근대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1849년 ‘페트라셰프스키’(Petrashevsky)라는 모임에서 벨린스키(Vissarion Grigorievich Belinskii)의 편지를 읽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28세 때였다. 12월 22일에 세묘노프스키 광장으로 끌려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사형을 집행받았다. 3명씩 끌려갈 때 그는 두 번째 줄에서 기다렸다. 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1분도 남지 않았을 때 니콜라이 1세(Nikolai I) 황제의 배려로 ‘집행 중지’ 종이 울렸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 4년간 혹독한 생활을 했다. 그때의 체험이 <죄와 벌>에 담겨 있다.

그는 4년을 보냈지만 소설 속 법과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로쟈)는 8년을 언도받았다(2명을 계획적으로 죽인 살인범에게 매우 관대한 처분이라 할 수 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는 로쟈는 다른 수형자들에게 늘 공격을 받았다.

“너 같은 건 도끼를 가지고 다닐 위인이 아니야.”
“이 불신자 놈아! 너는 하나님을 안 믿지!”

늘 목숨이 위협받는 춥고, 배고프고, 더럽고, 괴롭고, 힘들고, 고달픈 유형지에서 유일한 위안은 소냐(소피야 세묘노브나)의 방문이었다. 죄수들은 로쟈를 극히 싫어했지만 그를 찾아오는 소냐만은 좋아했다. 일종의 숭배를 하는 죄수도 있었다.

“아아, 소피야, 당신은 우리들의 어머니나 다름없소. 착하고 친절한 어머니란 말이오!”
소냐는 과연 누구이고, 왜 살인자를 따라 황량한 시베리아까지 갔을까?

유로지비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소냐는 매춘부이다. 퇴역 군인이자 주정뱅이 하급관리인 아버지와 계모의 강요로 매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자신의 직업인 매춘에 그리 충실하지 않은 듯하다. 로쟈를 설득해서 자수하게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고 설득력도 좋다. 로쟈는 그녀를 ‘유로지비’(iurodivyi=Holy Fool)라 부른다. 러시아정교에서 “세상에서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다. 즉 성스러운 바보이다. 그러나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진짜 바보이다.

가난한 살인자를 뒤쫓아 시베리아 벌판까지 따라가서 보살펴주는 것은 성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자기희생, 순종, 희망, 인내와 기다림으로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실천했다.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그녀는 로쟈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신약 <요한복음> 11장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사로의 부활’이다. 소냐는 이 구절을 들려줌으로써 살인자를 회개시키고 구원하려 한다. 로쟈는 두 명의 여자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했었다.

“난 말이야, 소냐, 궤변 없이 그냥, 자신을 위해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죽이고 싶었어!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이지 내가 아냐.”

그 악마는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의 관점에서는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그 악마성이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로운 삶을 파괴한다. 그것이 죄이다.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될까?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별에서 유형의 벌을 받는 죄인이다.

도끼로 노파를 죽이기 전 라스콜리니코프는 매우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돈이 없어 대학을 휴학했고, 거의 매일 굶주렸으며, 옷은 누더기에 가깝고, 거처하는 곳은 빈민촌이다. 그의 주변 사람 모두 빈민들이다. 그때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는 절망적이었다. 여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를 하다가 집주인 남자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성희롱을 받고 쫓겨났다는 것이다(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는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못된 본능을 지니고 있다). 다행히 변호사 루진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 소식은 로쟈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듀냐가 매춘부처럼 팔려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고통들이 몸과 마음을 짓눌러 결국 저녁 7시가 지나자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의 상황은 몹시 고달프다. 그러나 그 상황이 도끼를 집어들 만큼 절망적인지는 냉철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 더 알아두기

1.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악령>, <백치>, <지하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꼭 한 권을 더 읽는다면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권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양이 너무 방대하고 내용도 어렵다. 이 책을 읽을 시간과 정력을 다른 책에 쏟으면 4권은 더 읽을 수 있다. 만약 읽고자 한다면 옛날 판본을 구해서 2년 계획으로 읽기 바란다.

2. 벨렌스키(1811~1848)는 러시아의 혁명적 민주주의자이자 문학비평가이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잡지 <텔레스코프>, <모스크바 관찰자>, <동시대인> 등에 글을 발표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폐결핵으로 37세에 사망했다.

3. <죄와 벌>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으면 작품 이해가 더 빠르다.

4. 러시아 소설은 푸시킨의 <대위의 딸>(The Captain's Daughter), 톨스토이의 <부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수용소 군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고골의 단편 <외투>, <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권한다.

5.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명시를 썼다.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에 그의 동상이 있다. 아나똘리 리바꼬프는 이곳을 무대로 장편 <아르바뜨의 아이들>(Deti Arbata)을 썼다.

6.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러시아 대평원을 보고 싶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가는 대륙횡단열차를 타면 된다. 2015년에 나는 이 열차를 타고 21일에 걸쳐 러시아-폴란드-독일까지 갔다. 왜 러시아에서 위대한 음악가와 문학가가 많이 배출되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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