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는 어제(11/9) SK텔레콤, SK C&C, SK가스 등 3개사에 SK그룹 횡령혐의 관련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를 각각 요구했다. 이는 지난 8일 검찰의 SK그룹 계열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따른 것으로, 3사 모두 ‘횡령혐의 관련 보도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거래소는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SK그룹 상장회사 모두가 아닌 일부에 제한하여 조회공시 요구를 한 것으로 확인되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거래소의 조회공시요구 대상에 문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운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조속히 시정할 것을 촉구한다.
 
 
2. ‘조회공시’는 자본시장법 제391조 제2항 제3호 및 거래소「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제12조 등에 근거한 것이고, 이에 대한 기준과 방법 등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조회공시요구 운영에 대한 세부 지침 또는 절차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거래소의 재량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결과 제도 운용상의 심각한 허점이 종종 드러나고 있다.
 
이번 SK그룹 검찰수사와 관련한 조회공시요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8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곳은 SK㈜, SK C&C, SK텔레콤, SK가스, SK이노베이션, SK E&S 등 SK그룹의 6개 계열사인 것으로 확인되지만, 정작 거래소가 횡령 혐의 관련 조회공시를 요구한 곳은 SK C&C, SK텔레콤, SK가스 등 세 개 회사뿐이었다. 이 중 비상장계열사인 SK E&S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인 SK㈜와 SK이노베이션도 총수일가의 횡령 혐의와 회사와의 관련성이 의심되고 있었고, 특히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그룹 전체의 사업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최태원 회장 및 최재원 부회장과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소는 이들 두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조회공시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SK㈜,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회공시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 단순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또한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한 회사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도 알 수 없다.
 
 
3. 조회공시요구 대상이 문제가 된 사례는 또 있다. 우선, 지난 7월 초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요구 사례를 들 수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인수가 주식시장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지난 7월 6일, 거래소는 ㈜STX, ㈜LG, SK㈜, ㈜효성 및 동부씨앤아이에 대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라는 조회공시를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STX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와 관련하여 인수의향서 제출 등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실이 없다고 공시하였고, SK㈜는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답변하였다. 나머지 회사들도 ‘인수를 검토한바 없다’ 또는 ‘인수설은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그런데 조회공시 다음날 SK텔레콤은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SK㈜에 대해서만 조회공시 요구를 하였을 뿐 SK텔레콤은 요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공시의무 위반으로 규율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지난 8월말 현대자동차그룹의 녹십자생명 인수에 관한 사례도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거래소는 8월 29일 현대자동차에 ‘녹십자생명 인수 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였고, 이에 현대자동차는 ‘녹십자생명 인수를 검토한바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10월 24일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현대커머셜이 공동으로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경우 역시 현대자동차는 실제 인수 참여자가 아니므로, 공시위반의 책임은 묻기 어렵게 되었다.
 
 
4. 이상의 사례들은 현 조회공시 제도 운용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래소가 SK㈜와 현대자동차에 대해 인수공시 요구를 한 것은 SK그룹과 현대차그룹을 대표해서 답변하여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은 그룹차원이 아닌 개별회사에 관한 문제로 한정하여 답변함으로써 공시의무 위반의 책임을 기술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다. 이는 인수합병 등의 전략적 의사결정은 개별 회사 차원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상황에서, 거래소가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해 자의적으로 특정회사를 선택해서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조회공시 요구를 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별 기업을 독립된 실체로 상정하는 현행 법체계와 그룹 차원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현실 관행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나 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가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조장하는 현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번 검찰의 SK그룹 압수수색과 관련한 조회공시 요구에서처럼, 중요한 회사를 요구대상에서 빠뜨림으로써 의혹을 자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래소의 반성과 함께, 관련 제도의 보완 및 투명한 운용을 촉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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