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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하면 떠오르는 가수 김정구[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이동순 | 승인 2019.04.12 10:37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눈물 젖은 두만강' 1절

이 노래는 가수 김정구(金貞九, 1916~1998)의 대표곡 '눈물 젖은 두만강'(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오케 12094)의 한 대목입니다. 젊은 가수 강산에(1963~ )가 불렀던 노래 ‘라구요’의 도입부가 바로 이 노래가사를 대뜸 활용한 작품인지라 더욱 친근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옛 노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까지도 이 노래 한 소절쯤은 대개 곡조를 흥얼거릴 줄 압니다. 대학재학 중 입대해서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들이 뜻밖에도 이 노래를 MT에서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차츰 나이가 들면서 이 노래가 저절로 좋아지더라는 이야기를 해서 함께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비단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의 가사를 소절마다 음미해가며 부르노라면 우리가 왜 지금까지도 애타게 이 두만강 노래를 목 놓아 부르고 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이 노래를 친구들과 어울려 목청 높여 합창으로 부르다보면 간악한 일제의 폭압적 정책에 못 이겨 기어이 피눈물 쏟으며 강을 건너가야만 했던 식민지시대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눈앞에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보이는 듯합니다. 남북으로 두 동강난 국토의 애달픔과 그 속사정도 귀에 쟁쟁 들리는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스러운 북녘에서의 생존을 견디지 못한 채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헤엄쳐 위험천만한 탈북행렬에 돌진하는 북한인민들의 슬프고 처절한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가도록 두만강은 여전히 한숨과 비탄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소스라쳐 깨닫게 됩니다. 노래 한 곡이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슬픔과 탄식으로 적시게 하고, 매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이끄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김정구의 대표곡 ‘눈물젖은두만강’ 음반과 1960년대 영화로 제작된 ‘눈물젖은두만강’ 포스터 Ⓒ이동순

두만강(豆滿江)은 백두산 천지의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두루 거쳐서 흘러갑니다. 전체 길이가 무려 500㎞가 훨씬 넘는다고 하지요. 1930년대 이 두만강 연안에는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삼엄한 눈빛으로 대검(大劍)을 꽂은 장총을 들고서 오가는 나그네들을 모조리 검색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립단 소속 열혈청년들과 민족 운동가들은 두만강을 넘어 다니며 피 뜨거운 활동을 펼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두만강은 예로부터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의 피눈물이 흐르는 강이라 하여 일명 ‘도망강’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당시 레코드회사에서 조직한 악극단 단원들은 만주 지역의 동포들에게 노래와 새 음반을 소개하기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는데 반드시 이 두만강을 넘어가야만 했었지요. 작곡가 이시우(李時雨, 1913~1975)가 소속된 신파극단 ‘예원좌(藝苑座)’도 이런 이동악극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두만강초소에서 검문 중인 일본군 국경수비대 Ⓒ이동순

만주의 투먼(圖們)에서 공연을 마치고 두만강 부근 어느 여관에 머물고 있던 밤, 여인의 처절한 통곡이 들렸습니다. 이윽고 날이 밝은 뒤 이시우는 그 통곡의 사연을 물었고, 여관집 주인으로부터 독립군으로 떠난 여인의 남편이 불과 1년 전 일본군 수비대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내력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사연을 조선족 시인 한명천(韓鳴川)에게 들려주었더니 즉석에서 가사 1절을 만들었고, 여기에 이시우가 두만강 물소리를 들으면서 작곡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지요. 며칠 후 예원좌 무대공연에서 장월성(張月成)이라는 소녀배우에게 이 노래를 연습시켜 부르게 했는데, 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순회공연을 마친 뒤 이시우는 뉴코리아레코드사 소속의 가수 김정구를 찾아가 이 노래의 취입을 제의했고 김정구는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이시우가 쓴 가사는 1절 뿐이었는데, 작사가 김용호(金用浩, 1908~1967)가 여기에 2절과 3절 가사를 새로 붙이고 다듬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의 원작은 한명천이었고, 이를 완성시킨 작사가는 김용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막상 음반으로 찍어내기는 했지만 발매 초기의 판매량은 그리 흡족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는 이 음반의 제작경위와 가사에 대하여 줄곧 시비를 걸어왔고 기어이 발매금지 조치까지 내려서 이후론 거의 묻힌 곡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흘러간 1970년대, 이미 원로가수가 된 김정구가 무대에서 부를 노래는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취입한 대부분의 노래가 조명암(趙鳴岩, 1913~1993), 박영호(朴英鎬, 1911~1953) 등 월북 작사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눈물 젖은 두만강' 만큼은 온전하게 어떤 금지에도 걸리지 않았고, 분단과 더불어 북에서 월남해 내려온 실향민들의 향수를 크게 자극하는 유일한 노래로 뒤늦게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다 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라디오 반공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라는 짧은 프로의 시그널 음악으로 선택되면서 이 노래는 더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로부터 가수 김정구는 무대에 오를 적마다 이 노래를 단골곡목으로 열창했습니다.

가수 김정구 Ⓒ이동순

김정구는 원산의 광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점에서 점원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20세 되던 1936년 서울로 가서 가수가 되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형 김용환은 처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가수가 되려는 아우의 뜻에 제동을 걸고 반대했습니다만, 그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형은 아우가 그저 평범한 일상적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가수 김정구는 191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5남매 중 셋째였는데, 모든 형제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맏형은 가수와 작곡가를 겸했던 김용환, 김정구의 형수이자 형 용환의 아내였던 정재덕도 가수로 활동했지요. 나머지 아우들도 모두 가수,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김정구의 가계에 대해서는 가수 김용환 편에서 이미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김정구의 첫 데뷔 터전은 뉴코리아레코드사입니다. '어머님 품으로', '청춘 란데뷰' 등의 음반을 발표하고, 단번에 인기가수 명단에 오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영세한 뉴코리아레코드사는 경영난으로 1년이 채 안되어 문을 닫게 되었고, 김정구는 오케레코드사 창설의 숨은 주역인 김성흠(金星欽, 1908~1986)의 제의를 받아서 오케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1937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첫 작품은 '항구의 선술집'(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오케 1960)입니다.

부어라 마시어라 이별의 술잔
잔 위에 찰랑찰랑 부서진 하소

사나이 우는 마음 누가 아느냐
울다가 다시 웃는 사나이 가슴

연기처럼 흐르는 신세
내일은 어느 항구 선술집에서

-‘항구의 선술집’ 전문

이 노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 청년들의 심정을 완전히 매료시켰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오케레코드사의 간판 격 가수이자 인기가수로 등극한 김정구는 1937년 한 해 동안 무려 18곡이 넘는 가요를 폭발적으로 발표합니다.

‘눈물젖은두만강’의 작곡가 이시우 Ⓒ이동순

당시 부른 노래들은 '황금송아지', '눈깔 나온다', '뽐내지 마쇼', '광란의 서울', '백만 원이 생긴다면', '앵화폭풍' 등으로 곡목만 보더라도 모순과 부조리로 일그러진 식민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냉소와 풍자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노래를 만요풍(漫謠風)의 노래라고 합니다.

여기도 사꾸라 저기도 사꾸라
창경원 사꾸라가 막 피어났네
늙은이 젊은이 우글우글 우글우글
얼씨구 좋다 응응 꽃 시절일세 헤헤이
처녀 댕기는 갑사나 댕기
총각 조끼는 인조견 조끼
밀어라 당겨라 잡아라 놓아라
두둥실 응흥 꽃이로구나
일천간장 다 녹이는 꽃이로구나

낮에도 사꾸라 밤에도 사꾸라
창경원 사꾸라가 막 피어났네
혼 나간 범나비 너울너울 너울너울
얼씨구 좋다 응응 꽃 시절일세 헤헤이
영감 상투는 삐뚤어지고
마누라 신발은 도망을 쳤네
영감 마누라 꼴 좀 보소
어헐싸 응흥 꽃이로구나
싱긋벙긋 껄껄 웃는 꽃이로구나

홀애비 사꾸라 쌍둥이 사꾸라
창경원 사꾸라가 막 피어났네
동물원 친구들 웅성웅성 웅성웅성
얼씨구 좋다 응응 꽃 시절일세 헤헤이
신사 모자는 찌부러지고
아가씨 치마는 쭉 찢어졌네
저 거동 좀 봐요
정당정 응흥 꽃이로구나
어헐씨구 창경원에 꽃이로구나

-'앵화폭풍(櫻花暴風)' 전문

이 노래에서 앵화(櫻花), 즉 사꾸라가 뜻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와 한반도에 와 있는 일본인 전체, 혹은 그 일본을 위해서 앞장서는 얼빠진 한국인들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일제가 기획하고 주도했던 창경원 ‘야앵놀이’(밤벚꽃놀이)에 동원되어 분별을 잃고 술에 취해 비틀비틀 갈팡질팡 꼴불견으로 몰려다니는 몽매한 식민지 대중들의 천박한 광경을 은근히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조선악극단의 대표가수로 일본무대에 출연 중인 김정구(왼쪽), 1950년 태평양악극단 무대에서 민요를 부르는 김정구 Ⓒ이동순

김정구가 무대에서 이런 만요풍 노래를 부를 때는 반드시 코믹한 제스처(gesture)를 사용해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당시 김정구 노래의 가사는 주로 박영호, 작곡은 손목인(孫牧人, 1913~1999)과 박시춘(朴是春, 1913~1996) 등 가요계 중진들이 각각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이후로 크게 히트했던 김정구의 노래들은 '왕서방 연서', '총각진정서', '바다의 교향시', '철나자 망녕', '월급날 정보', '모던 관상쟁이', '세상은 요지경', '수박행상', '낙화삼천(落花三千)', '뒤져본 사진첩', '장모님전 상서' 등입니다. 일제 말 오케레코드가 조선악극단을 꾸려서 일본 도쿄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김정구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김정구는 형 김용환이 운영하던 ‘태평양악극단’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국토의 불안정국이 계속되더니 기어이 통한의 6.25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김정구는 가족을 이끌고 부산으로 피란 내려와 떠돌이 빵장수, 지게꾼, 무대 출연 등으로 몹시 고달픈 실향민의 생존을 이어갔습니다. 그 힘겨운 과정 속에서도 김정구는 레코드사에서 몇 곡의 노래를 취입했습니다. 피란 시절과 그 이후에 발표한 노래들은 ‘오월의 청춘’, ‘밤거리 스냅’, ‘차이나 맘보’, ‘코리안 맘보’ 등의 경쾌하고 발랄한 무도곡 스타일의 가요작품들입니다.

1975년 가수 김정구는 회갑을 맞아 성대한 기념무대를 마련합니다. 1980년에는 정부가 수여하는 보관문화훈장도 가수로서 맨 처음 받았지요. 가는 곳마다 오로지 '눈물 젖은 두만강'만을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고, 이제 이 노래는 김정구의 상징이자 단골 레퍼토리였습니다. ‘두만강’하면 먼저 떠오르는 가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김정구란 가수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이 노래가 필수적으로 뒤따랐습니다.

김정구의 음반 ‘낙화삼천’과 ‘눈물젖은두만강’ Ⓒ이동순

1982년은 가수 김정구의 생애에서 매우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왜냐하면 떠나온 고향 북녘 땅에서 열리는 고향방문단 특별공연에 출연하여 '눈물 젖은 두만강'을 평양의 북한동포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열창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날 함경남도 원산 출생의 실향민 가수 김정구의 가슴 속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님 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우니
떠나간 그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눈물 젖은 두만강' 2, 3절

모든 원로가수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무대에서 사라질 때 김정구는 칠순이 넘은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왕성한 무대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모습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지요. 마침내 1992년 김정구는 노환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갑니다. 진작 이민을 간 가족들 곁으로 갔습니다.

1998년 가을, 가수 김정구는 향년 82세로 미국 땅에서 쓸쓸히 세상을 하직합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한반도의 북녘 땅, 고향 하늘로 이승의 모든 속박과 부자유에서 풀려난 김정구의 애타는 영혼은 산새처럼 훨훨 날개를 저어 찾아갔을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한 쪽 손을 독특하게 휘저으며 '눈물 젖은 두만강'을 열창하던 김정구의 구수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논객닷컴=이동순] 

 이동순

 시인. 문학평론가.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1973), 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1989).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등 15권 발간.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여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 1987)을 발간하고 민족문학사에 복원시킴. 평론집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등 각종 저서 53권 발간.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음.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계명문화대학교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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