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S 앨리엇 <황무지> 일부.

4월이 오면

4월을 맞이하며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하고 깊게 생각해도 도무지 답이 안나왔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T.S 엘리엇의 시구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고, 만우절 장난도 재미없게 느껴졌다.

문득 달력을 보고 불편함의 근원이 뭔지 깨달았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는 바로 그날이었다. 잊을 수 없는 슬픔의 날.

2년 전 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글이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다들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나 정확해서 소름 끼칠 만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분명 그날을 기억한다. 아침에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깨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본 기사가 침몰 중이라는 기사였다. 그리고 곧이어 본 것이 바로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오보였고, 그 후로 5년이 흘렀다. 꽃 피는 봄이던 4월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인상과 황무지가 된 마음만 남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픽사베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맹자의 곡속장(觳觫章)에 이양역지(以羊易之)라는 말이 나온다. 제나라 선왕이 소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눈물흘리는 소가 불쌍해서, 소를 풀어주고 대신 잡혀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다. 

그럼 대신 잡혀간 양은 불쌍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맹자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봤기 때문이라고 답을 내린다. 그만큼 ‘본 것’과 ‘못 본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네티즌과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 이양역지가 생각난다. 그들은 유가족과 살아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에게 거친 발언을 쏟아낸다. 상처주는 말을 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유가족들을 만나보았더라면, 아니면 주변에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자가 있었더라면 익명 속에 숨어서 고민 없이 말을 던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얘기도 지겹다’, ‘이제 그만 하자’ 라는 말은 상처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사회의 기억력

기억은 사실 뇌가 가진 힘보다는 ‘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날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겠는가. 어제 무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기억을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의했다면, ‘기억력’ 의미도 재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 상에는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해 두는 능력’으로 정의된 기억력은 어쩌면 ‘기억이 가진 힘’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면 그 수많은 기억들이 모여 이룬 힘이 얼마나 셀까.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커다란 기억의 힘을 나는 ‘세월호’에서 느낀다. 그러니 더욱 제대로 기억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재수사 청원도 그러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그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참사를, 그 전후로 저지른 어른들의 잘못을 똑똑히 기억한다면. 세월호라는 이름은 단지 마음을 황무지로 만든 상처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할 커다란 계기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가 ‘제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모든 과거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고 어른들의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세월호는 역사나 오래된 상흔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청년칼럼=허승화]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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