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그 때 그 귀여운 아저씨는 신도림역 9-4번 플랫폼에 서 있었다. 늦은 저녁, 동인천행 급행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저 멀리 누군가 양 팔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중년의 아저씨가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멋쩍었는지 아저씨는 곧장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했고, 아저씨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라졌다. 핸드폰 화면에 담겨있던 그의 푸근한 표정이 떠오르며 집에 가는 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버지를 위해 사진앨범을 만들던 때였다. 30년을 몸담은 회사에서 퇴직한 아버지는 깊은 상실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그동안의 가족여행 사진을 앨범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잘 나온 사진을 추리기 위해 아버지의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는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셀카 사진이 수십 장씩 쏟아진 것이다. 그곳에는 다양한 배경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왜 놀랐을까. 아버지는 멀리서 찍어주는 전신사진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긴장을 풀고 웃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낯설었기 때문일까. 

Ⓒ픽사베이

셀카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며 찍는 사진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선택해 저장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삶에는 그런 종류의 선택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빈손으로 태어나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식들 키우느라 숨 가쁜 한 세월을 보내야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뭐가 무너질 것처럼. 

아버지가 살아온 세상은 희로애락을 마음 놓고 표현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참는 것, 굴욕을 삼키는 것, 물 대신 술을 들이켜는 일상이 너무나 당연시되어, 깨어 있다는 이들조차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던 시기였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30년을 버티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누르는 사람이 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만났다면 난 그 밑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회사에서의 아버지는 “까라면 까” 마인드로 무장한 전형적인 꼰대였기 때문에. 

신기한 것은 아버지는 자신이 그런 상사였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정 많고 인간적인 상사라고 착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본인이 어떤 ‘인간’으로 보일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사람보다 실적이 먼저였고, 소관 부서의 실적을 높이는 것만이 리더로서의 모든 책임이라고 믿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쁜 상사란 무능한 상사이고, 돈을 못 버는 사기업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걱정한 건 회사 밖에서의 아버지였다. 

당신은 집에서도 딱딱하게 만져지는 결과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고자 했다. 돈, 집, 차, 자식들의 성공 같은 것들로. 그들 중 하나라도 삐딱하다 싶으면 아버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며칠 밤을 새우곤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본인이 그려 놓은 ‘플랜’에 맞춰 일이 돌아가도록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치관 차이라고 손 놓고 있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지는 외로워질 것이 뻔했다. 

자신 밖에 있는 것에만 의존하다보면 그들이 떠났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언제 즐거운지 알아갈 여유를 가진 적이 없다. 남는 시간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사용했고, 남는 돈은 저축을 하거나 자식들에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혼자 노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은퇴한 뒤 힘들었던 이유는 열정을 쏟을 대상을 상실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맞게 된 자신만의 시간을 감당하기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셀카를 찍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다. 이젠 회사와 가족 말고도 아버지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 것 같아서. 학창시절 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이제 매일 카페에 가서 책을 본다. 20대 초반에 듣던 올드팝을 틀어놓고 자전거를 타다, 벚꽃나무 아래에 멈춰서 셀카를 찍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확히 정면으로 셀카를 찍는 바람에 얼굴이 넓적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음에 아버지를 뵈면 얼짱 각도를 알려드려야겠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얼굴 위로 45도가 되는 지점에서 비스듬히 찍어야 예쁘게 나온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사진첩이 앞으로도 당신의 셀카로 가득 차길 바라니까.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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