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논객칼럼=황인선] 간만에 집에 온 큰아들하고 점심을 먹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은 산업공학과 4학년이다. 뜻밖에 아들이 정치 이야기를 했다. 원래 공대생들은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이제 취업이 중요해진 4학년이다 보니 친구들도 요즘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친구들은 “진보를 믿고 뽑았는데 경제도 별로고 비전도 없고 썩은 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X실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그들과 생각이 좀 다르다고 했다.

Ⓒ픽사베이

SKY 캐슬은 생각하지 마

아들은 “원래 진보는 성장보다는 분배중심이야. 그동안 양극화가 심해지고 비인간적 사회가 되어 사람 중심, 분배정책을 펼치는 것인데 진보에 성장정책을 묻기보다는 분배정책은 잘 되어가나 물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터무니없는 망언들과 그에 대한 멍청한 반격들로 얼룩진 바보들의 정치가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세상은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흘려들으려던 나는 속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아들의 생각에 도움을 주려고 먼저 ‘아젠다 세팅 효과(agenda setting effect)’를 꺼내들었다. 이는 1960년대에 매스 미디어가 수용자의 태도 변화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제한효과이론’이 지배적일 때 매스 미디어가 인지측면에는 효과가 크다는 주장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다. 1972년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맥스웰 매콤과 도널드 쇼는 어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매스 미디어가 할애하는 보도의 양과 그 문제들에 대하여 수용자 대중들이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느냐 간에 아주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었다.

그런데 이는 지금도 우리가 쉽게 인지하는 효과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유치하다면서 따라 하는 유행어, 정치권 망언 등에 흥분하면서 그를 비난하다가 보면 정작 옳은 것, 진정성, 인기는 없지만 해야 할 것 등은 대중의 관심 밖이 된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가고 중요한 것은 망각되며 대중은 양비론과 뜬금포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명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한 것이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은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 전략도 꽤 쓴다. 이는 상대방의 입장과 피상적으로 유사하지만 사실은 "허수아비"를 내세워 그를 반박하는 사기 논증 전략이다. 허수아비를 아무리 공격해 보았자 상대방의 원래 입장은 전혀 반박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더지 때리기’일 수도 있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두더지를 아무리 때려도 두더지는 약을 올리며 끝도 없이 나타나 더 세게 때리지만 결국 망치를 든 사람은 지치게 된다. 이들 전략은 3분을 생각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유효한 전략이다.

아! 이 막중한 시국에 어떻게든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기성세대는 프레임 전쟁과 허수아비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죽이고 있으니, 저성장 시대를 힘들게 가는 아들 세대에게 미안하다. 속이 참 답답하다. 그래도 아들의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라는 마지막 한탄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들이 아니라 내가 바뀔 시간이야. <SKY 캐슬>은 생각하지 마.”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전 제일기획 AE/ 전 KT&G 미래팀장
저서<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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