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우리 문화재 이해하기] 천정대에서 자온대까지, 백마강에 남겨진 역사 이야기

[논객칼럼=김희태] 보통 부여를 방문하게 되면 백제의 도읍인 사비(泗沘)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부여에서 만날 수 있는 백제의 흔적은 생각처럼 많지는 않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 사비성의 안과 밖을 구분했던 부여 나성 ▲ 백제 왕실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군과 능산리사지 ▲ 단 2기만 남은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인 정림사지 오층석탑 ▲ 백제 시대의 왕궁지로 여겨지는 관북리 유적과 피난산성 개념의 부소산성 ▲ 백제 때 만들어진 저수지 궁남지(宮南池) 등이 남아 있다.

사비성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부여 나성 Ⓒ김희태

이 외에 많은 사람들이 낙화암(落花巖)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앞서 삼천궁녀와 관련한 기사를 통해 낙화암과 삼천궁녀의 이야기는 문학적인 표현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부여를 떠올리면 낙화암이 생각나는 건 그만큼 상징적인 표현으로 인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낙화암을 보기 위해서는 부소산성을 통해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고,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에서 낙화암을 바라보거나, 고란사 선착장을 통해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사비의 중요한 교통로였던 백마강 Ⓒ김희태

생각해보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강을 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교통이나 수송의 편리성 때문으로,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백마강과 사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백마강을 중심으로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백제를 포함해 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즉 백마강에 담긴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백제, 더 나아가 부여를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 천정대를 시작으로, 낙화암과 고란사, 조룡대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

의외로 백마강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첫 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천정대(天政臺)다. 천정대는 지금의 국무총리 격인 재상을 뽑는 정사암이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에는 호암사에 정사암이 있다고 했으며, 이곳에서 재상을 선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백제의 귀족 회의인 정사암회의가 열린 장소로, 나름의 상징성을 갖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호암사지로 추정되는 곳은 논으로 변해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으며, 천정대의 경우 강 쪽으로 돌출된 바위가 왠지 모를 신비감을 주는 곳이다.

천정대, 재상을 선출했던 장소로, 정사암회의가 열린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천정대를 출발해 백마강교를 지나면 멀리 낙화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낙화암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삼천궁녀의 설화가 전하는 곳으로, 본래는 타사암(墮死巖)으로 불렸던 곳이다. 그러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삼천궁녀의 이미지가 더해지고, 궁녀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잎처럼 보여서 낙화암이라 불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삼천궁녀의 설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비성의 함락과 함께 일부 후궁들이 뛰어내렸을 개연성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소가 주는 여운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낙화암과 함께 주목해볼 장소로 고란사(皐蘭寺)를 들 수 있는데, 삼천궁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특히 고란사 사찰의 벽화에는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 낙화암과 함께 보면 좋다.

백마강에서 바라본 낙화암 Ⓒ김희태
고란사 벽에 그려진 삼천궁녀 벽화 Ⓒ김희태
백마강의 유래가 되는 조룡대 Ⓒ김희태

한편 고란사 선착장 옆 돌출된 바위가 이목을 끄는데, 이 바위의 이름은 조룡대(釣龍臺)다. <삼국유사>에서는 용암(龍巖)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바위는 소정방이 강에 살던 어룡(=용이라고도 한다)을 낚았는데, 이때 미끼로 쓴 것이 백마였다고 한다. 이에 금강 중 해당 구간을 백마강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물론 설화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는 부여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룡대의 전설이 백마강의 유래가 되었다는 내용은 나름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바라볼 지점이라 할 수 있다. 

■ 구드래 나루터를 중심으로, 왕흥사지와 부산각서석, 자온대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

황포돛배를 타고 낙화암과 고란사, 조룡대를 보기 위해서는 구드래 나루터로 가야 한다. 구드래 나루터는 사비성의 나루이자 동시에 무역항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지금도 부여의 농특산물 공동브랜드의 이름이 ‘굿뜨래’로 불리고 있다. 일본어 중 ‘구다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백제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타국의 상인이나 사신들이 처음 입항하는 나루에서부터 ‘구드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은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구드래 나루터의 전경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 왕흥사지 Ⓒ김희태

 

한편 낙화암과 구드래 나루터의 맞은편에 왕흥사지가 있는데, 이 사찰은 목탑지에서 출토된 사리기의 명문을 통해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왕흥사가 채색이 웅장하고 화려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왕이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서 향을 피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이야 다리가 놓여 있어 강을 건너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시기 왕흥사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산각서석,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사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김희태
대재각에서 바라본 백마강, 좌우로 왕흥사지와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을 볼 수 있다. Ⓒ김희태

또한 왕흥사지 방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산(浮山)이 있는데, 백마강 쪽으로 대재각(大哉閣)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재각 안에는 ‘부산각서석(浮山刻書石)’으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바위에는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이 새겨져 있다. 해당 글씨의 뜻은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효종이 백강 이경여(1585~1657)에게 내린 비답인 것을 알 수 있다. 비석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와 유사한 사례가 가평 조종암(朝宗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당시 조선의 사대 인식을 바위에 새겼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바라볼 지점이다.

자온대의 전경, 붉은 색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김희태

마지막으로 부산을 출발해 백제대교를 지나면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볼 수 있는데, 이 바위의 이름이 자온대(自溫臺)다. 바위의 중앙에는 붉은 색 글씨로 ‘自溫臺’가 새겨져 있는데, 바위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두 기록을 비교해보면 <삼국유사>에서는 바위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자온대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 바위가 등장하고, 10명이 앉을 만한 공간이 있다는 점 ▲ 백제의 왕이 등장한다는 점 ▲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차이점도 있는데, <삼국유사>의 경우 왕흥사로 예불하러 가는 길에 바위에서 절을 하는 행위를 한 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바위 위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백마강은 물길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현장으로, 강과 바위에 담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유무형의 자산인 백마강을 어떻게 하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 문화연구소장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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