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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이되오[이명렬의 맹렬시선]
이명렬 | 승인 2019.04.26 09:22

[청년칼럼=이명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새로운 공간 개념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공간을 이분법으로 명확히 나눌 수 있게 된다. 젊은이들이 넘치는 술집이나, 아이가 먹기 힘든 매운 음식을 파는 음식점은 방문을 꺼리게 된다. 주차가 되지 않거나 한참을 줄을 서고 기다려야 하는 맛집도 방문하기 어렵다. 결국 아이와 함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굳이 찾아 나서게 된다.

이런 부모의 욕구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곳이 바로 키즈카페다. 트램펄린, 블록 장난감, 카트, 볼풀 등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다양한 놀이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바닥에는 충격 방지 매트도 빈틈없이 깔려있다. 건물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흔치 않은 공간이다. 아이들을 위해 맵지 않은 맞춤형 식사도 제공한다. 이름 그대로 아이들을 위한 카페다.      

Ⓒ픽사베이

키즈카페에는 독특한 요금 정책이 존재한다. 아이 요금이 어른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어른 입장요금은 음료 주문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기이한 요금정책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익숙한 듯 요금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카페 안에 풀어놓는다. 아이들은 비좁은 우리 안에 갇혀 있다 갓 풀려난 야생동물처럼 무섭게 키즈카페 안을 질주한다.

지극히 도시적인 공간에 야생성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처음 키즈카페를 방문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괴성과 땀내, 요란한 애니메이션 BGM과 널브러진 장난감들 속에서 멀미하듯 어지러움을 느낀다. 이런 특유의 산만함이 키즈카페만의 매력이고, 제한된 시간이나마 허용된 일탈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달아오른다.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나게 카페 안을 휘젓는 아이들을 보면 거꾸로 된 요금 정책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사실 아이들의 일탈이라고 해봤자 소리 지르기, 던지기, 뛰기, 마음껏 군것질하기 등이다. 수렵시대부터 전해온 지극히 원초적인 본능이건만 공동주택에 사는 도시 아이들에게는 금지된 행동들이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음식점, 공공시설 같은 공간에는 더욱 위험한 행동이다.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아이들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된다. 부모들은 짐승을 효과적으로 진정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요즘 음식점에서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다. 부모도 아이들에게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 탐탁지 않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오붓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노키즈존의 논란과 키즈카페의 확산은 같은 맥락이다. 노키즈존을 외치는 사업주와 소비자의 요구도 충분히 이해된다. 아이의 입장을 막는 것이 서비스의 질적 유지나 수익성 측면에서 이득이 될 수 있다. 비싼 요금에도 굳이 키즈카페를 찾을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도 십분 공감한다. 결국 아이를 동반한 가족과,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공간을 달리 써야만 하는 걸까.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노키즈존이 아동에 대한 차별행위라는 가이드를 내놓았지만,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인 유현준 건축가는 획일적인 학교 공간을 빗대어 '감옥보다 못한 시설’'이라 말한다. 감옥보다 학교시설의 건축 예산이 더 저렴한 현실에 개탄하며, 답답한 공간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노키즈존의 논란은 우리네 학교 건축과 무서울 만큼 닮아 있다. 나이별로 공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다양성보다는 제품과 서비스의 동질한 제공이 최우선 과제다. 공간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자비란 없다. 어쩌면 우리는 공간을 애써 분리하는 시선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분양과 임대 아파트 사이의 담벼락, 강남과 강북의 집값 차이 등은 이미 익숙한 구분 값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공간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고, 다양한 공간에서 겪는 낯선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황금 같은 휴가철에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힘들게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아이가 시끄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간을 분리하자는 생각은, 관계의 다양성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갉아먹는 꼴이다. 물론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부부끼리도 빈번히 싸우는 마당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아이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개인에게 무턱대고 인내를 강요할 수는 없다. 맘충이라 불리는 몇몇 부모들의 이기적인 행태까지 용인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아이들을 어른의 편리를 위해 특정한 공간에 몰아넣거나,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은 너무 매정한 일이다. 나이는 차이일 뿐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초에 모두의 것이었던 공간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다.

노키즈존이든 키즈카페든 서로의 욕심을 조금만 비우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번 바라보자. 때론 밉기도 하고 말썽도 부리는 천방지축 아이들이지만, 이들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고 미래다. 소중한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가 아닐까? 우리네 아이들이 자유롭게 열린 공간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한 아이의 아빠로서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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