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참 이상했다. 똑같은 일인데도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나는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을 찰 때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같이하면 날카로운 패스와 정교한 슛이 나오는 반면에,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있는 날은 여지없이 똥볼이 나왔다.

직장에서는 꼭 한 명씩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꼴 보기 싫은 인간이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공부를 하느라, 돈을 버느라 참았다. 내가 왜 특정한 인간형을 싫어하는지, 왜 그들만 있으면 내 업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굶어 죽기 싫었으니까.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원봉사로 연극과 재능기부 강의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극단에서도 재능기부 강의에서도 안 맞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 그 사람만 있으면 나는 대사를 까먹었다. 강의에서도 특정한 사람이 보고 있으면 말실수가 나왔다. 다행히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잠시 멈춘 후 생각을 해보았다. 도대체 왜 나는 그들만 보면 똥볼이 나오는 걸까. 도대체 나를 루저로 만드는 그들은 어떤 인간인가.

Ⓒ픽사베이

나를 루저로 만드는 인간들 

나는 지금까지 줄곧 내가 꼴 보기 싫어했던 인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군대를, 그것도 남들 21개월 할 때 3년 4개월이나 갔다 온 나는 군대에서 꼴 보기 싫은 인간 두 명을 만났다. 한 명은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을 받은 인간이었다. 녀석은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악을 썼고, 항상 남들보다 잘한다고 떠벌리고 다녔으며 항상 남들을 챙겨준답시고 간섭했다. 남들을 도와준다고는 나섰으나 항상 어휴, 이것도 못해? 내가 도와주지, 하는 식이었다. 녀석은 자치위원인가 뭔가를 맡더니 흡사 조교들처럼 같은 훈련생들을 괴롭혔다. 녀석과 헤어지고 자대배치를 받고 나니 상관이 비슷한 인간이었다. 2등병 보다도 못하다는 어리버리 소위 시절 대위였던 상관은 항상 나를 무시했다. 항상 어휴, 내가 너를 시키리, 차라리 내가 하지, 이런 식이었다. 나는 혼자 하면 잘하다가도 녀석들이 보고 있을 때는 어김없이 삽질을 했다. 밥을 먹을 때도 녀석들만 생각하면 반찬을 흘렸다.

제대하고 외국에까지 가서 취직을 했는데도 똑같은 인간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며 훈수를 두었다. 직장을 쉬면서 봉사 정신으로 연극을 할 때도, 강의를 할 때도 비슷한 인간이 나타나니, 나는 지구상에서는 놈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지구를 떠나야 하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떤 책을 보는데 저자가 이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인간들은 소위 나르시시스트라는 인간형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기애의 근저에는 처절한 열등감과 실패의 보상심리가 있다고 한다. 녀석들은 끊임없이 남의 결점을 지적해서 자기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한단다.

과연 그러했다. 녀석들은 나의 잘못을 끝까지 찾아내어 자신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나는 녀석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자꾸만 똥볼을 날렸다. 녀석들이 의도한 결과였다. 녀석들은 자기 일을 하기 보다는 남이 잘못하는 것을 찾는데 더 열심이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괴롭히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자기를 괴롭히며 열심히 하는 사람. 나는 첫 번째 유형과 맞지 않고 두 번째 유형과는 맞다. 이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말이 많고 그 말의 대부분은 남들을 비난하고 흉을 보며 뭔가를 시킨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말을 할 시간이 없다. 자신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남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남 흉을 보지도 않는다.

내가 남을 간섭하는데 열심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은 지 3년째라고 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형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 친구는 25년 가까이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숱한 무시와 멸시를 견뎌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고 의사가 원인은 아버지의 성격과 태도에 있다고 했단다. 그날부터 아버지를 무시하기로 했고 떨어져 사니 마음의 병이 순식간에 완쾌되었다고 한다.

나도 친구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이 유형의 사람들 마음에 들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 사람들은 남의 칭찬을 갈구했으므로 눈을 맞춰주고 칭찬해주고 항상 두 배의 관심을 기울였다. 또 녀석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리를 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내 칭찬과 관심, 그리고 노력에 무시와 멸시로 반응했다. 그리고는 더욱더 나를 지배하는 그 악마의 힘을 키워갔다. 사실 해결방법은 단순했다. 나도 이 사람들을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나와 맞는 사람에게 관심을 

나는 이제 나를 괴롭히는 사람보다는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내가 존경하는 팀장이나 선생님들은 한 가지 특징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자기보다 더 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도와준다는 것. 뉴질랜드에 있던 한 팀장은 나의 잘못을 지적하기는커녕 자기가 어떻게 하면 내가 업무를 더 잘하게 될까를 고민했다. 내가 한 번 윗선에서 크게 인정받는 보고서를 쓰자 보고서에 슬쩍 자기 이름을 넣기는커녕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내가 뽑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내가 더 잘난 것 아닌가?”

나는 이제부터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나를 루저로 만드는 인간들에게는 관심을 끊기로 했다. 잘 가라 이놈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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