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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바깥[허승화의 요즘론]
허승화 | 승인 2019.04.29 15:55
Ⓒ픽사베이

집도 외롭다

혼자 있는 집에 들어선다. 집도 혼자 나도 혼자다. 집은 영원히 이 자리에서 혼자 있을 것이고 나는 혼자서 쏘다니고 혼자서 집과 함께 머문다. 집이 아무리 내 바깥을 둘러싸고 있어도 집도, 나도 영원히 혼자일 것 같다. 집은 가족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원룸에 살다 보면 집이라는 것의 정의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내가 집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 또 열 수 있는 문이 있는 무언가였다. 그러나 이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 있는 것은 바깥이다.

어느새 1인 가구라는 어색한 말이 정착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집에 대해 다시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

사랑과 르상티망

어쩌면 무기력이 정체성이 된 현대인들이 외로움보다 귀찮음을 더 앞에 두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불 밖은 위험해’ 라거나 ‘혼자서 맥주나 마시며 영화 보는 것이 바깥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안락해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고, 다음 시대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특성과 아직도 대다수의 문화권에서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 인간이 일반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감정을 나눠야 의미 있다고 믿으므로) 이 고독과 외로움의 찬양은 니체가 말했던 ‘르상티망’(질투,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무기력한 우리는 먹고 싶은 포도가 신 맛일 거라고 예상하며 자기 합리화하는 니체 이야기 속의 여우처럼,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게 필요하지 않아’ ‘난 지금의 생활로 충분해’라고 자기 세뇌하는 가난한 이의 주장처럼 애써 우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외로움 찬양을 들여다보면 실은 사랑이 하고 싶은데 그것을 느낄 상대조차 찾을 수 없는, 기회든 능력이든 노력이든 무엇인가 하나쯤 부족한 사람들이 ‘저 사랑은 떫을 거야’하고 정신 승리하는 것. 혹은 눈 앞에 내가 당장 돈으로 살 수 있는 값싼 행복(혹은 소확행)만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어린아이 같은 심보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넓게 보자면 여러 장애물로 인해 능동성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이것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나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예외는 있다. 어떠한 사랑 앞에 자신의 몸을 드러내 놓기에 상처 자체가 삶의 큰 걸림돌이 되어버린 자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만인 앞에 상처를 드러내 놓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 못 되기에 그들 모두의 사정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다만 누구든 사랑이라는 단어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국립국어원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말을 정의할 때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좁게 정의해 버렸어도 신경 쓰지 말자. 말의 정의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각자의 마음에서 내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남녀 간의 결혼, 사랑 이런 이야기를 모두 떠나 바깥을 보자. 나를 비롯한 주변의 부족한 자들끼리 타인을 사랑해보려는 시도가 바로 사랑이란 말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오면, 원룸은 어쩌면 집이라기보다는 이불보다 조금 큰 껍질일지도 모른다. 이 껍질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부끄럽고 벗으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드는 속성을 지녔다. 껍질 바깥에는 타인이 있다. 타인은 무섭다.

그럼에도 잠긴 원룸의 문을 열고 껍질 바깥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유가 있는 나라를 꿈꾼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가 잉크가 마르도록 이야기했듯 우리는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살아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청년칼럼=허승화]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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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화  tmdghk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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