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15일까지 경기 남양주아트센터서

[오피니언타임스]

산악인 화가 김영자씨

 1984년 12월 7일 여성산악인 김영자씨가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1봉(해발 8091m)을 등정했다. 동계 시즌에 안나푸르나 1봉의 등정은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축협 직원이던 그녀는 이날 제 4캠프를 떠나 10시간여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파쌍노르부 등 셀파 4명과 전날 안나푸르나 북서면 7700m 지점에 제 4캠프를 설치하고 밤을 보낸 뒤 정상 등정에 나섰던 것. 그녀로서는 1983년 가을 안나푸르나 등정실패 이후 두번째 도전이었다.

안나푸르나 1봉 원정대는 10분여간 정상에 머물며 정상등정 모습 등을 촬영했다. 그런데 하산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옆에 있던 자일 꾸러미가 휘리릭~ 요란한 소리를 내며 풀려나갔다. 순간 두 셀파의 몸이 동시에 공중에 떠 날아가는 듯 하더니 수백m 수직 얼음 밭에 내려 꽂히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안타까웠던 것은 셀파 중 한명이 카메라가 얼지 않도록 우모복 상의 안에 품고 있었는데,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카메라에 담긴 정상정복 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그녀는 국제 산악계로부터 안나푸르나 1봉 등정성공에 대해 공인을 받지 못했다.

1차 원정때 후배 1명과 셀파 2명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는데, 불과 1년만에 또 2명의 목숨을 담보했으니, 과연 이런 희생을 딛고 서야만 하는 현실에 죄책감과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산과 관련된 모든 것과의 인연을 놓았다.

세월이 흘러 '산악인 김영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다. 안나푸르나 등정 이후 그녀는 삶은 어땠을까?

“산악인으로 험한 산들을 넘고 넘었지만 안나푸르나 1봉 등정 이후 내게 온 삶의 무게는 히말라야 보다도 더 무거웠습니다. 같은 산악인이었던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사별한 뒤 사업마저 어려워져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03년 파킨슨 병이라는 희귀성 난치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주치의는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세차례나 하면서 저산소에 오랫동안 노출돼 뇌 건강이 손상을 입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많이 회복됐지만 그녀는 16년째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삶의 의욕을 잃지 않고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해왔다.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아온 그녀가 한창 그려내고 있는 꿈은, 바로 화가다.

 

“어릴 적 꿈이 화가였어요. 그림에 관한한 자신감이 넘칩니다. 산에 도전했던 것도 현실적으로 미술을 접어야 했던 반대급부의 현상이었을 듯 싶습니다. 산을 통해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해요”

그녀는 그동안 그린 자신의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을 갖는다. 산에서 내려와 화실에서 ‘어릴 적 꿈’을 제2의 삶으로 표현하고 있는 화가 김영자.

“자랑하긴 아직 이릅니다. 그림이 조금 특별한 느낌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주위에서 개인전을 하라고 권유해 용기를 내 봤습니다. 소망이라면 아직은 예비 작가이지만 미술계에도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역량있는 작가로 서고 싶습니다"

전국 공모전 3회 입상경력을 갖춘, 유화수업 6년차 산악인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김영자 첫 작품전=2019년 5월 9일~15일(일요일 휴관) 남양주아트센터(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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