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1. 

10여년 전 일이다. 대중식당에 가서 설렁탕이나 갈비탕을 시켜 먹을 때, 고기에서 야릇한 소독 냄새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고기 덩어리에 파란 도장이 찍혀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통관 과정에서 검역 도장이 찍힌 표적이다. 그것은 “우리 식당은 수입산 쇠고기를 쓰더라도 이런 검역절차를 밟은 고기를 쓰니 안심하라”는 주방장의 배려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났다. 병든 소를 먹을 수 없고, 또 광우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소비자 주권운동이다. 그러나 집권당인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나 보수신문은 운동권의 악의적인 선동이며,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흑색선전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진영논리로 비화되어 피터지는 싸움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은 지금까지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없으며,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위해성을 과장하는 등 일정 부분 과도한 주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을 흠집내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후 수입산 쇠고기에서 야릇한 소독냄새가 나는 설렁탕이나 갈비탕은 먹지 않아도 되었다. 엄격한 통관절차를 거쳐서 품질좋은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반증이다. 먹거리 안전이 확실하게 담보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 외국산 쇠고기가 문제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 사람들 입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고기를 보내던 시절과 달리 보내더라도 한번은 걸러서 보낸다는 주의력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쇠고기 파동 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자국에서도 먹지 않는, 늙은 소가 국내에 들어온다고 해서 난리였다. 미국은 24개월 미만의 어린 소를 미국 가정의 식탁에 올리는데, 국내에는 질기고 맛없는 미국내에서도 팔리지 않는 쇠고기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농림수산부의 협상팀도 일방적으로 압도되고,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금수 조치를 내릴 수 없도록 불평등협정이 체결되었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배에 실어다 주는대로 갖다 먹어야 한다니, 우리 자식들은 늙고 병든 소를 대책없이 먹어야 하느냐며 주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쇠고기 파동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보다 생활 민주주의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발언에 대한 변화된 모습이다.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있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위한 생활 민주주의로 진화한 셈이다. 그런데 이것을 막는 세력이 있었다. 먹는 것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도 친위 매체를 동원해 강압적으로 막다가 더 큰 화를 자초했다.

4일 서울 광화문에서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자유한국당

필자는 임진왜란과 구한말, 해방공간, 그리고 오늘의 정치 상황을 대비해보곤 한다. 임진왜란의 명장 충무공 정충신 장군(이순신만 충무공이 아니다)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깃발’을 지방신문 남도일보에 연재하고,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에 친일파를 등용시켜 미군정을 꾸려가는 해방관리에 반기를 들었다가 좌익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국방경비대 젊은 장교들의 정신을 새겨보는 소설 ‘행군’을 연재하면서 우리 근세·현대사 공부를 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임진왜란 때나, 구한말이나, 해방 공간이나, 지금의 정치 상황이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공통점은 지배세력(기득권)의 오만과 군림과 탐욕이 나라를 거덜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사대주의에 외세지향적이란 점이다. 국민은 덜 깨어있고, 깨어있더라도 폭압적 권위에 눌려 겁을 먹고 살아간다. 그러니 가차없이 짓밟고 유린하면서 ‘독점 부패의 저수지’에 첨벙 빠져드는 만용을 부린다. 통제하고 저항하는 자가 없으니 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도대체 가진 자의 도덕적 겸손, 사회적 책무의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나 영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목을 내놓았다. 실례를 들어보자. 중세 영국과 프랑스간에 100년 전쟁이 벌어졌다. 영국은 노르망디의 깔레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항복시켰다. 전승국 영국왕 윌리엄 3세는 패배한 깔레 지역민에게 저항한 죄를 물어 깔레 시민 6명을 처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깔레시장, 깔레시의 학교장, 시장 번영회장, 경찰서장, 부자, 금융조합장 등 깔레 시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처형을 자처하고 나섰다. 깔레시를 이끈 책임자로서 그 책무를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같았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자기 집 머슴이나 마을의 병신, 거렁뱅이를 내보내고, 자신은 물론 자녀들을 몰래 외지로 빼돌렸을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외국으로 보냈을 것이다. 외국은 권력과 돈 가진 자의 도피처가 된 것이다. 살펴보면 그들은 나라에 이득을 준 것이 별로 없다. 자신의 이익을 나라의 이익과 등치시키니 착시효과가 있었을 뿐이다. 이익의 사유화, 책임의 사회화. 

백성이 무지하니 그렇게 해도 통용되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역도로 몰아 밟았으니 너나없이 떨고, 그래서 횡포를 보고도 자기 못난 것을 체념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이라고 해서 다를까. 상식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인다. 반대파를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남북 대결과 색깔론, 지역분열(감정)에 불을 지른다. 그런 지배 프레임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그러면서 확실하게 권력을 독점하고 자본과 인사권을 독식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70년 체제를 강고하게 유지해왔다. 그것이 근래 형식상 허물어져가는 추세다. 

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대한민국 국방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라며 "북한의 도발을 두둔하듯, 북한을 편들듯, 김정은을 지키듯 문재인 정권의 본질없는 안보의식과 거짓말에 우리는 의분을 터뜨리고 피를 토한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북한이 쏜 발사체에 관한 정보를 우리 군이 미사일에서 발사체로,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한 것으로 여러 차례 정정한 데 대한 지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북한의 발사체는)중거리 미사일이나 장거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라는 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서도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단거리로 여러 발 발사됐다"고 했다. 

그는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해서도 “(이번 발사에 대해서)어떤 상황에도 국제적 경계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며 "그것들은 비교적 단거리였다. 우리는 그것들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은 이렇게 미국도 아니라고 하는데 북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쏘았음을 암시하고, 문재인 정부의 “본질없는 안보의식과 거짓말에 의분을 터뜨린다”고 말한다. 그에 앞서 한미군사훈련과 정찰기 비행으로 북을 위협한 것에 대해서는 뭉개버린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야당으로서 어느정도 정치공세는 인정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해 당사국인 미국도 아니라고 하는데 북한 공포를 과도하게 유포하는 것은 단순 정치공세라기보다 국민적 관점에서 위협이며, 자기파괴 행위다. 이런 안보과잉, 대결과잉, 분열과잉으로 몰아가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전엔 얻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적 공격 프레임이다. 

4. 

6일 <리얼미터> 여론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9∼30일과 이달 2∼3일 YTN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천18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2%포인트)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주보다 1.7%포인트 오른 49.1%로 집계됐다. 민주당 지지율도 2.1%포인트 오른 40.1%를 기록하며, 40%대에 복귀했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역시 1.5%포인트 오른 33.0%를 기록했지만, 지난번 조사 때 민주당과의 오차 범위를 벗어난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각자 지지세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한나라당의 지나친 공격이 민주당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기울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공격하는 양상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가 실제로 독재적으로 간다면 국민이 열렬히 박수를 칠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의 젊은 당원이 “문재인 저딴 게”라고 헌 막대기 취급하듯 말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집회장에서마다 다시 북한 따가리에 독재자라고 고성을 지른다. 보수신문 댓글에서 ‘문죄인’ ‘문재앙’ ‘문병신’이라고 서슴없이 모욕하는 언론자유 남용시대에 문제인이 독재자라고 한다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한국당이 그런 말을 하려거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 쟁취를 외치던 학생들을 잡아 고문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한번 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의 한마디라도 한 다음 나왔다면 그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왕 독재자라고 발표했으니 민주주의의 지수로 통하는 국제 언론자유 지수를 한번 보자. 국경없는기자회가 최근 발표한 2019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80개 조사대상국 중 41위를 기록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였던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 2016년에는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해 세계적으로 언론자유 후퇴국가로 분류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43위에 이어 올해 41위로 올라섰다. 이는 미국을 앞선 수치다. 미국은 지난해 45위에서 올해 48위로 하락했다. 한국은 올해 아시아에서 가장 언론자유도가 높은 국가로 지목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최고 순위는 노무현 참여정부시절이던 2006년 31위였다(미디어오늘 4월18일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확성기를 틀어놓고 사람들 모으려 하지만 진실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허하고 진부하다. 지지세력을 모아놓고 세 과시하며 손님을 끌려하지만 감동이 없는 곳에 누가 따르겠는가.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을 ▲베트남 접속자 급증 ▲조작 ▲북한 소행설로 퍼뜨려 막으려 해도 한국당 해산 청원은 날로 늘고 있다. 여전히 국민을 조작의 대상으로 알고,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때문에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황교안 대표의 광주 방문도 마찬가지다. 5.18민주화항쟁을 마구 짓밟고 궤변과 터무니없는 조작의 내용들을 여과없이 토해내면서 뭉치자고 하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특정지역으로 묶으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여론도 싸늘하지 않았는가. 

5.

국민은 정치적 시민 민주주의 시대에서 생활 민주주의, 민생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다. 이렇게 시대정신이 바뀌었다. 쇠고기 파동에서 보듯 주민 밀착형의 민주주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어둡던 시절의 과오들을 과감히 씻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평화를 사랑하는 넓은 세계관과 생활 민주주의, 민생 민주주의의 대오에 낄 때 한국당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여전히 낡은 옷을 입고, 낡은 이념의 구호를 상투적으로 외치면 결국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당할 것이다. 옛 수구 기득권에 연연해, 되지도 않는 억지와 궤변과 생떼를 쓰면 그만큼 국민과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지세력이 모이니 착시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의 국민은 무지몽매한 시대의 국민이 아니다. 군림하고 호령한다고 해서 굴복하는 국민도 아니다.

달라진 세상을 알아야 하고, 그에 걸맞는 정치 디자인을 해야 할 때다. 여차하면 지역감정에 호소해 배지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들의 기만책을 여러 해를 거쳐오는 동안 이미 학습했다. 설사 그렇게 해서 배지를 단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역사의 퇴물로 퇴출되고 말 것이다. 이제는 가치로, 인물로, 능력으로, 시대정신으로 정치적 대표를 뽑는 추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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