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님 은행 위해 모든 것 바쳐” “임직원들 매일 면회” 증언 잇따라

채용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 대한 직원들의 존경심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이광구 전 행장ⓒ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취임한 지 1년 6개월째입니다. 2017년 하반기 터진 채용 비리로 이광구 전 행장이 물러나고 조직이 흔들렸던 우리은행은 새 선장의 지휘하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손태승 행장은 우리은행의 과제였던 지주사 전환을 이뤄내고 지난 1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올랐습니다. 행장직과 겸임입니다. 이후 그는 국제자산신탁, 동양자산운용, ABL자산운용 인수·합병을 성사시키고 롯데카드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거침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적도 호조세입니다. 지난 1분기 우리금융그룹 당기순이익은 5690억여원에 달했습니다. 시장 전망을 웃도는 수치입니다. 우리금융그룹은 핵심이익 창출 능력을 높이고 자산 건전성 개선을 해낸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모로 손태승 회장 체제는 우리은행, 우리금융그룹에 완전히 안착한 듯 보입니다.

다만 우리은행엔 아직 이광구 전 행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를 안쓰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광구 전 행장이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후 그런 분위기가 더 커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광구 전 행장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북부지법 법정에서 드러났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1부(박우종 부장판사)는 이광구 전 행장 등의 업무방해 혐의를 심리하는 3차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피고 측 증인신문이 있었습니다. 김 모 우리은행 재무기획부 부부장, 신현석 우리피앤에스(우리은행 산하 부동산 자산관리업체) 대표, 이 모 우리은행 경기북부 영업본부 영업추진센터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피고 측이 부른 증인들이라 이광구 전 행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것으로 짐작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발언 수위는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인사부 재직 경험이 있는 김 부부장은 행장이 채용을 전결한다고 했습니다. 검찰이 “(행장이) 공채 선발 기준에 미달한 지원자를 특정인이나 고위직 자녀란 이유로 붙일 수 있나”고 물었지만 김 부부장은 경영 판단 사항이라고 잘랐습니다.

신현석 대표는 이광구 전 행장이 우리은행을 위해 얼마나 사심 없이 일했으며 조직에 헌신했는지 전했습니다. 우리은행의 숙원이었던 민영화를 해내려고 자신과 이광구 행장이 열심히 뛰었다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신현석 대표는 이광구 전 행장을 모시면서 두 번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2016년 11월) 우리은행 지분을 사들일 과점 주주의 낙찰 물량이 29.7%에 달해 민영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행장님을 부둥켜안은 채 울었다”며 “행장님이 2017년 12월 저를 따로 불러 사임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때 직원들에게 보낼 이메일 첫 문구에 사랑하는 우리 가족 여러분을 쓰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신현석 대표는 “행장님은 우리은행에 모든 열정을 바쳤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했다. 저로선 정말 참담했다”며 “지난 1월 구속되셨을 땐 너무 황망해서 눈물도 안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임직원들이 행장님을 매일 면회하고 있다”며 “역대 은행장, 노조위원장들도 온다”고도 했습니다. 신현석 대표의 증언에 방청객 일부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이 센터장도 이광구 전 행장을 적극적으로 감쌌습니다. 그는 “이광구 행장님은 역대 행장들이 실패한 민영화에 성공했고 성과에 승진과 보상을 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며 “전 직원들이 행장님 말씀은 이뤄진다고 여겨 사기가 올랐다”고 했습니다. 이광구 전 행장이 뛰어난 실적을 거둔 여성 지점장을 본부장으로 특별 승진시키는 것을 보고 분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도 했습니다.

재형저축상품 관련 에피소드도 나왔습니다. 재형저축은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의 약자로 저축 시 비과세 혜택과 높은 이자를 제공합니다.

이 센터장은 “고객에게 소득 증빙 자료를 받고 재형저축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서류 없이 거래했다. 준법지원부에서 해당 직원들에게 불완전판매 책임을 따지겠다고 했다”며 “당시 부행장이었던 이광구 행장님은 영업점에 세밀한 안내를 하지 못한 본점 책임이 크다며 직원들 잘못을 묻지 말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이 센터장은 “행장님은 1심 선고 하루 전인 지난 1월 9일에도 임원 부친상에 조문을 오신 분”이라며 “평일엔 구치소에서 행장님을 접견하려 해도 늘 예약이 차 있어 주말에 뵙는다”고 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행장님처럼 직원들 위상을 높여준 분이 없다”며 “오래된 관행 때문에 행장님이 피고석에 앉아있는 게 안타까워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자원했다. 재판부가 행장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이 센터장의 눈물 어린 호소에 방청석은 다시 한번 훌쩍였습니다.

이처럼 이광구 전 행장에 대한 우리은행 구성원들의 존경과 그리움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달성한 민영화 등 성과. 고위 공직자와 고액 거래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비리.

이광구 전 행장의 모든 공과(功過)는 손태승 회장이 이끄는 우리은행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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