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비준안 통과 현장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있었다. 그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고 이미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날 국회의 본회의장 참석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박 전 대표는 특별한 의미에서 시선을 받을만했다. 우선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거 계엄령을 선포하면서까지 한일협정을 맺은 바가 있었다. 그 아버지의 뒤를 이은 셈이다. 다만 이번에는 주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결정대로 움직였다는 것이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장 유력한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라는 점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다른 일정도 취소하고 황급하게 본회의장에 나타났고, 본회의장에서는 최루탄가스가 날리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투표를 마쳤다. 당인으로서 할 바를 다한 것이다.
투표가 끝난 뒤에는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서둘러 떠났다. 그러나 표정은 굳어 있었다고 한다. 소신껏 투표했으면서 표정은 왜 굳었을까?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해서일까?
사실 집권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가 강행처리에 참여한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을 새벽에 기습처리할 때도 당시 이회창 총재가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 개정안을 무리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강력한 저항을 받았고,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나아가서는 김영삼 정부는 그때부터 몰락의 과정으로 들어섰다.
이번 경우 그 때와는 물론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비슷한 것도 있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놓은 상황이고,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1997년 대통령선거 하나만 앞두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선거 이전에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치러야 한다. 그러니 그때보다 상황은 더 엄중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자유무역협정 강행처리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강행처리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박 전 대표에게 악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여론이 더 나빠지면 그녀는 앞으로 고전을 각오해야 한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는 이번에 자유무역협정까지 처리했으므로 할 일은 거의 해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뒤처리에 더 치중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번 선거는 사실상 ‘박근혜 선거’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의 공천을 비롯한 선거준비 등 모든 과정이 그녀의 입맛에 맞게 진행될 것이다. 그럴수록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한 일에 대한 공과를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특히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강행처리의 공과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 평가가 우선 총선에서부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6년 노동법 처리에 동참했던 이회창 전 총재는 결국 선거에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인지 여부는 이번 강행처리에 대해 국민여론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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