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너무 많은 상처와 갈등을 남겼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자유무역협정까지 올해 3가지 이벤트가 모두 이 나라의 상처를 깊게 한 채 막을 내렸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까지 23일 긴급장관회의에서 “갈등을 더 이상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을까?
그러나 이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비준안이 통과된 후에도 갈등은 커지고 있다. 비준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와 야권이 접점 없이 부딪힌데 이어, 이제 그 후폭풍이 세차게 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힘겹게 비준안이 처리된 김에 오는 29일쯤 서명하고, 정부도 조속한 발효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야당은 “날치기 폭거”라고 규정하고 본격적인 무효화투쟁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산안 심의 등 국회일정을 완전히 거부하고, 다른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들과도 합세해 촛불집회를 비롯해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태세이다. 이날 민주당은 ‘한미FTA날치기 규탄대회’를 연 데 이어 범국본과 야5당 연석회의에 잇따라 참석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투자자국가소송(ISD) 조항 폐기와 한미 FTA 재협상이다. 그렇지만 그런 재협상 요구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야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말하자면 올해 벌어졌던 이명박 정부와 야권,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의 갈등과 다툼이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내년 4/11총선까지는 여야가 극심한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미 FTA 문제는 다가올 총선에게 야당에게는 더 없이 좋은 또 하나의 의제가 되었다. 기존의 정권심판 심리에 덧붙여 한미 FTA를 제2을사늑약으로 몰아붙이면 선거운동하기는 아주 좋은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 주장이 참으로 간단명료하여 다른 어떤 구호로도 제압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여세를 대통령선거까지 몰아가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알기 쉬운 기치를 내걸어 손쉬운 승리를 거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나라당도 한-미 FTA를 강행처리하면서 이런 사태는 충분히 각오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서 다가오는 두 선거가 얼마나 힘겨워질지도 대충 예상했을 것이다. .
이런 사태를 막아보고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23일 한미FTA대책을 100%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ISD 재협상을 틀림없이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설명이나 선심성 대책으로 야권의 결집과 민심을 돌이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비판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촛불집회도 재연되고 있다. 그런 움직임이 어느 정도 커질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튼 적극적인 설득이나 정책을 통해서 이런 분위기를 통제하는 것이 시급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국면이 초래될 수도 있어 보인다.
요컨대 한나라당으로서는 또다시 큰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자칫하면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노동관계법을 무리하게 통과시킬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나 다름없다. 소수야당 하나 따돌리는 것은 사실 그다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전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폭넓은 야권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것은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한나라당은 이번의 '작은 승리'에 너무 취하지 말아야 한다. 14년 역사의 ‘최장수정당’이라고 하니 이런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나갈 것으로 믿고 일단 지켜보고자 한다. 얼마나 역량이 있는지 보고 싶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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