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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선생, 그리고 스승의 기준[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김봉성 | 승인 2019.05.14 10:57

[청년칼럼=김봉성] 스승의 날 크고 작은 선물을 받으면 민망하다. 나는 스승이 아니다. 잘 봐주면 선생이고, 실체는 강사다. 강사, 선생, 스승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5월 15일이 불편하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제자’로 지칭하지 않는다. 강사-수강생, 선생-학생, 스승-제자로 대응되는 언어 감각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제자가 되면 나를 스스로 스승으로 지칭하는 것 같아 낯뜨겁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내 언어 감각에 실소했지만, 개인적으로 꽤 견고한 생각이어서 스스로에게 ‘제자’는 금기어였다. 사교육 강사 주제에 스승은 뻔뻔했다.

201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충북 제천시 남천초등학교 교실에 학생들이 그린 선생님 모습이 칠판에 붙여져 있다. Ⓒ남천초등학교

사교육의 핵심은 돈이다. 학부모는 참고서 고르듯 학생(자녀)을 가르칠 사람을 고르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받은 돈 만큼 성과를 내면 되었다. 이렇게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강사와 수강생이었다. 돈이 끝나면 관계도 끝났다. 나는 자기 소개할 일이 있을 때, 나를 강사로 지칭했다.

강사가 시간을 껴입으면 선생으로 진화했다. 수업 시간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정서도 교류되었다. 궁합마다 교감 강도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강이 아닌 한 발생하는 교감은 대체로 유의미했다. 내 학생들은 내게 많은 것을 물었다. 사회 현상, 학교 일, 개인 고민 등은 여과 없이 내게 매달렸다. 그리고 재잘되었다. 이갈이 때문에 모든 것을 씹어대는 강아지처럼 이것, 저것, 그것, 말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말로 만들어내려는 듯했다. 나 역시 학생 시절을 겪었고, 먹고 산 세월이 있고, 약간의 독서량 덕분에 학생들의 모든 말에 내 말을 대응해줬다. 학생들이 흡족하게 웃을 때, 나는 학생들의 ‘신뢰할 만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나를 선생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았다.

요즘 나는 『SKY캐슬』의 김주영 선생이 된 듯하다. 학생의 학생부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학생부는 학생의 학교 생활이어서 나는 학생의 삶을 관리했다. 학생과 더 밀착되었다. 학생이 내게 걸어오는 신뢰가 한층 무거워졌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랩퍼와 사교육 강사는 유사하다. 첫째, 진입장벽이 낮다. 그럭저럭 흉내내는 건 쉽다. 둘째, 다들 자기가 No.1이다. 나도 그런 종류의 자신감으로 학생을 이끌었다. 부끄러움은 뻔뻔함으로 상쇄되었다. 나는 꽤 괜찮은 선생이라는 자의식에 익숙해졌다.

최근 나의 ‘선생’을 되묻는 경험을 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내면을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새로운 마음 하나를 발견했다. ‘기대 받지 못하는 열등생의 일상감’을 체험했다.

동호회 하나를 들었다. 혼자 꾸준히 하던 일이라 동호회 내에서 중간은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꽤 열등했다. 괜찮았다. 애초에 배운다는 생각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에 나는 상처 받았다. 나는 그들 무리에 끼지 못했다. 내 내성적 성향과 수 년 간 다져진 그들의 견고한 친목은 상극이었다. 나의 열등함에 그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너는 그만큼의 사람이다.’를 공기로 느꼈다.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열등생이라면 누구나 가질 감정이었다. 모임은 스트레스였다. 열등생들은 이 기분을 일상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래 몰랐었다.

선생질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드문 경험일 것이다. 교대, 사대 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교육에 자리잡았다면 근거집단 내에서 못해도 중간 이상을 경험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동호회 경험은 귀했다. 학생에게 필요한 정서적 지원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았다. 지금까지 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었다. 학생들의 자존감을 꽤나 짓밟아온 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단순한 사실이었다. 학생과 선생도 인간 관계를 기반으로 이어졌다. 인간 관계는 공감에 기반했고, 공감은 자신의 체험에 상상이 더해져 발휘된다. 학생들을 폭넓게 공감하기에는 도서관에서 배양된 선생들은 경험의 폭이 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교육 행정가들(이들 또한 집단 내 열등감의 경험이 부족할 듯하지만)의 고민일테고, 당장 나는 좋은 선생이 되려면 소설이라도 읽어야겠다.

그렇다면 다음은? 스승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초사이언이나 봉황만큼 막연하다. 내 옛 선생님들, GTO의 영길, 무협 영화의 사부를 떠올려봐도 딱 맞아 떨어지는 상이 없다. 다만 스승은 선생보다 묵직하다. 무게의 출처는 아마도 삶일 텐데 삶의 어떤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일컫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일단 제대로 살아야겠다. 지행합일이 급하다. 나는 선생이라는 권위 뒤에 숨어서 나도 지키지 않는 것들을 조언이나 충고랍시고 내뱉었다. 그때마다 뜨끔했지만 선생의 권위는 좋은 가면이었다. 당시야 통하겠지만, 학생도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것이다. 나도 한낯 시시한 어른 중 하나였음을. 스승은 세월을 두고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승은 내가 되는 게 아니라 학생이 만들어주는 듯하다. 세월이 흘러 내 삶을 알아주고, 그것을 모방하고 싶을 때, ‘학생의 스승’은 학생에게 수정(受精)되고, 나를 그렇게 불러줄 때 내가 스승으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도무지 자신이 없다. 난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선생밥 먹는 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선생이나 제대로 되어야겠다. 그리고 지행합일도. 그렇다면 고3처럼 살아야 하나? 조금 빡빡해 보이지만, 내 학생들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으려면 나에게 주어진 길을 제대로 걸어보는 수밖에.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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