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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의 최후는 더 아프다[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고라니 | 승인 2019.05.16 11:32

[청년칼럼=고라니] 공포의 합평회 날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벚꽃 날리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시를 읽는 낭만을 기대하며 문학회 문을 두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문학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써 온 시와 소설, 에세이를 공유하고 감상평을 나누곤 했다. 말이 좋아 합평회지, 한 마디로 씹고 뜯고 맛보는 자리였다.

평가는 잔혹했다. 짝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쓴 누군가의 시는 “이런 건 니 페이스북에나 올려”라고 평가받았고, 어떤 선배가 한 학기 내내 쓴 단편소설은 라면냄비 받침으로 쓰면 딱 좋겠다는 소리나 들었다. 나도 용기 내서 한 번 에세이를 갖고 간 뒤부터 다시는 글을 공유하지 않았다. 형편없이 난도질당한 그것이 무엇에 관한 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 때 느낀 모욕감만이 여태까지 아프게 남아 있을 뿐이다.

문학회에서 유령회원으로 지낸다고 타인에게 글을 보여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회학 전공 시험은 모두 서술형이어서 매 학기마다 천하제일 논술대회가 펼쳐지곤 했다. 시험 결과는 단순해서 받아들이기 쉬웠다. A+부터 D-까지, 사족 없이 깔끔했다. A가 나오면 그만큼 내가 열심히 한 거고, B가 나오면 덜 한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성적발표 기간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간 적은 없었다. 성적으로 이의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진상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 때 연구실을 찾아갔어야 했다.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평화로운 글쓰기의 역사는 거기까지였다. 취업준비와 직장생활을 거치며 난 무서우리만큼 집요해졌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 취업 자소서를 하나 둘 완성했고, 입사 후에는 조금이라도 지적받은 보고서는 점심도 거르며 고치고 또 고쳤다. 문서철을 뒤져 일 잘한다는 선배들의 보고서를 찾아 필사할 때쯤엔 나도 내가 미쳤나 싶었다.

야망 때문은 아니었다. 직장에 헌신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싫어서 일이 남아도 정시퇴근하고 카페에 가져가서 할 정도였으니까. 단지 내가 작성하는 글이 일종의 상품이라면, 최소한 하자 없는 글을 지어 출하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보고서가 반려당해도 난 아무런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대학시절 개인블로그에 올린 글을 누군가 읽고 댓글이라도 달면 가슴이 벌렁벌렁하던 때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졸업한 지 1~2년 만에 멘탈이 강해졌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좋아서 하는 일과 업으로 하는 글쓰기의 차이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닌가 싶다.

Ⓒ픽사베이

“사랑해서 널 떠나보낸다”같은 멜로드라마도 아니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어떤 비판이나 평가도 거부한 나의 굳은 지조는 내면을 항상 평온하게 해줬다. 좋아하는 일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난 문학회 활동을 포기하고 사회학 시험결과를 100% 수용하는 식으로 내 자존심을 지켰다. 동시에, 어제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가로막혔다.

4학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던 전공과목은 슬프게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온몸으로 즐겁게 공부한 과목이었다. 만약 그 때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치면 더 좋은 글이 될지 집요하게 물어보았더라면, 합평회에서 신랄하게 공격받은 에세이를 구겨버리는 대신 몇 번이고 고쳐서 다음 합평회에 가져갔더라면 어땠을까.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분명 지금보다는 좋은 글을 쓰고 있으리라.

세상에는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변태들도 많아서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가 너무 아프다면 걸러 듣는 연습도 필요하다. 상처를 굳이 사서 받을 필요는 없다. 내 멘탈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으려면 부족하고 못난 부분들도 마주볼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고수란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아도 어쨌든 같은 일을 계속 해나가는 사람일 테니까. 초라해지는 것이 두려워 흠뻑 젖기를 주저하고, 그 주변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다 한세월을 보낸다면, 그 마지막은 너무 아플 것 같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내일은 약간만 덜 평화롭길 조심스레 바란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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