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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값 이야기[임종건의 드라이펜]
임종건 | 승인 2019.05.17 11:11

[논객칼럼=임종건]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가 요란했던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저는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로 국세청을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국세청 간세국은 부가가치세나 주세와 같은 간접세 담당 주무국입니다.

당시 신군부의 개혁마인드로 충만했던 작고한 오 모씨가 간세국장이었습니다. 그 분이 어느날 제게 귀띔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얘기를 했습니다. 진로주조가 진로 소주 값을 올리겠다는데 그 이유가 괘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픽사베이

인상가는 병당 10원인가 했었는데 그 때도 진로주조는 압도적인 시장 우위의 기업이었고, 연간 판매되는 소주만도 수억 병이었습니다. 10원만 올려도 수십억 원이라는 당시 경제규모로 비추어 상당히 큰 수익이 나게 돼 있었습니다.

오 국장이 괘씸하게 여기는 것은 인상의 이유였습니다. 당시 국내에선 진로주조 백화양조 해태주조 간에 치열한 국산 양주판매 경쟁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 진로의 제품이 가장 경쟁에서 뒤졌습니다.

진로는 소주 값 인상의 이유로 양주 영업에서의 적자를 들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마시는 비싼 양주장사에서 난 적자를 서민들이 마시는 소주 값을 올려서 메우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주무국장의 논리였습니다.

저는 그의 얘기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소주 값 인상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 국장으로부터 진로 측이 인상 직전 해외여행 중이던 자신에게 여러 달 치 봉급액수가 들어있는 돈 봉투를 묵고 있는 호텔로 가져왔기에 돌려줬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소주 값 인상은 더욱 부당하게 여겨졌습니다.

소주 값 인상 문제는 당시 경제기획원의 물가심의까지 통과됐지만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의 지갑을 채워준다는 논리를 이길 수는 없었던지 진로는 결국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업의 잘못된 회계 관행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으로 진로주조의 양주 사업부를 계열분리 하는 조치로 이어졌습니다. 분식회계 문제로 계열분리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이트진로가 소주 값을 5월1일부터 병당 65.5원 올렸습니다. 지난 3년 여 동안 가격이 동결된 데다 최저임금과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입니다. 한 해에 팔리는 소주가 대략 36억 병이고, 진로의 시장점유율이 25%대이므로 500억 원이 넘는 수익증대가 예상됩니다.

그런데 일부 업계의 분석가들은 진로가 맥주장사에서 난 결손을 메우기 위해 소주 값을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주의 주도가 낮아지는 추세여서 오히려 주정원료 부분에선 가격인하의 요인이 있다고도 합니다. 중소기업도 아닌 하이트진로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나, 업계의 선두주자가 값 올리기에도 앞장을 서는 것도 선뜻 납득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른 소주 업체들이 값 인상에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오히려 현행가격 유지를 선언하는 회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도 현행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는 주류세 개편안이 술 값 인상의 빌미가 된다고 보고 추진을 보류한다고 합니다.

맥주는 양주와는 달리 소주나 마찬가지로 서민주입니다. 맥주에서의 적자 보전 대책으로 소주 값을 올린다 해서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양주산업은 일본의 ‘산토리’ 같은 제대로 된 국산 브랜드 하나 키우지 못하고 사양길로 접어들어 안방을 수입양주에 내주었습니다. 제가 그 때 소주 값 인상을 너무 단순논리로 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이유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산 맥주는 OB와 크라운이 경쟁했는데, 소주보다 비싼 술이었고, 영업도 잘 되었습니다. 지금 국산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맛이 없는 맥주라는 혹평 속에서 수입맥주에 눌려 만년 적자상태라고 합니다. 이러다가 맥주 역시 양주 꼴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아무튼 소주 값은 올라갈 것입니다. 업소들은 이미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65.5원을 1000원으로 튀겨서 4000원 하던 소주 한 병을 5000원으로 올려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민들이 여기에 대응 할 수 있는 방법은 덜 마시는 것 뿐 입니다. 돈을 위해서도, 몸을 위해서도.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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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imjk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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