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
나는 용감해, 나는 상처받았지만, 내가 원하던 모습이야. 이게 나야.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나오는 OST, ‘This is me’의 가사 일부다. 영화는 가난한 신분이었던 주인공 휴 잭맨이 (서커스를 열어서)성공한다는 것과, 욕심으로 인해 재정적, 관계적 위기를 겪지만 다시 (서커스 단원인)동료들에게 용기를 얻어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다.

생각보다 흔한 이야기였지만 화려한 연출과 하나도 버릴 수 없는 OST가 진부해질 수 있는 틈새를 메웠다. 관객들은 열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40만명에 그친 관객수지만, 월드와이드 수익만 4억 달러를 돌파했으니까. 그리고 위대한 쇼맨은 내게 운명에 대한 재정립을 도운 영화로도 남았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장발장이 되었다. 그는 빵을 훔친 대가로 감옥에서 19년을 산 죄인이다. 자베르는 “5년은 니 죗값이고 나머지는 탈옥하려 해서 그런거야!”라고 말한다. 없던 서러움도 생길 만한 인권유린이다. 상습 절도범도 아니고 죽어가는 조카를 위해 빵 하나 훔쳤더니 19년형을 살게 하면 누구든 인성이 비틀어지지 않을까. 출소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다. 뭘 해도 죄인이라는 낙인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 리 없다는 확신에서다.

영화든 소설이든, 현대든 고전이든 가리지 않고 대중을 이끄는 스토리에는 ‘너희들은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어’라는 낙인적 뉘앙스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곳이니까.

그런데 고정적으로 보이는 운명의 장막 뒤에는 조금 재미있는 게 숨어있다. ‘운명은 스스로가 개척하는거야!’라는 소년만화 같은 외침이다. 더 웃긴 건 정말로 ‘운명’이라는 게 그런 성격이라는 거다.

영화 ‘레미제라블’(왼쪽)과 ‘위대한 쇼맨’에 출연한 휴 잭맨. Ⓒ네이버영화

장발장은 은식기를 주는 목사에게 구원받는다. 운명을 저주하던 장발장에게 온 또 다른 운명이다. 그리고 2017년 말에는 그 장발장(휴 잭맨)이 위대한 쇼맨의 서커스 단장 ‘바넘’이 되어 운명을 비관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자신의 특이한 외형이 저주스러워 숨어사는 이들을 향해 바넘은 말한다.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이건 영화에서 주인공이 쇼맨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이기도 하지만, 동료들에게는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된다. 운명이 충분한 가변성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사전적 의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하는데, 또 다른 운명이 찾아와 기존의 운명을 상쇄하고 상황을 극복하는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아이러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야 말로 우리가 가장 바라는 ‘개척’의 시나리오니까.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 바넘과 그의 서커스장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이 ‘운명’이라는 성질의 양면성을 대변하고, 서로 교환한다.

예컨대 서커스 단장인 바넘과 This is me를 부른 레티 러츠(서커스 단원)의 상황을 들여다보자. 러츠는 여성임에도 수염이 가득한 남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노래를 잘 부르지만 자신의 생김새 덕분에 부모들조차 부끄러워서 그녀를 평생 숨겨놓는다. 그런 그녀에게 바넘이 찾아온다. “제발 돌아가주세요”라는 그녀의 말에도 바넘은 “아름답기까지 해요”라고 말한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과 자신의 노래를 인정해준 바넘 덕분에 그녀는 발걸음을 뗀다. 바넘이 생각하는 기획은 일종의 ‘프릭쇼’(생물학적으로 희소한 무언가를 전시하는 행위)이기에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간의 존엄성 논란이 발생하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러츠에게는 ‘평생 숨어 살 것’이라는 비관적 운명에서 자신을 구원한 은인이 된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외치는 This is me는 이렇게 탄생한다.

서커스는 크게 흥행한다. 영국의 여왕에게까지 소문이 들어갈 정도로. 인연으로 인해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게 된 바넘은 오페라 쇼를 기획한다. 바넘은 자신의 쇼가 ‘가짜 쇼’라는 것에 개의치 않으려고 하면서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진짜 쇼’를 기획하느라 러츠와 서커스 단원들에게 소홀하게 된다. 서서히 경영 자체에 위험조짐이 보이는데도 바넘은 멈추지 않다가, 스캔들이 터지고 서커스 극장이 불에 전소되면서 파산한다.

오페라 쇼는 중도하차를 했고, 빌려놓은 대출금은 아직 갚을 수가 없는 상태인데 아내마저 두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버린 바넘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장인이 영화 초반부에 말했었던, “너의 가난 때문에 내 딸은 다시 돌아오게 될거야”라는 운명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러츠와 단원들이 바넘을 구제한다. 한 푼도 없으니 꺼지라는 바넘에게 입닥치라고 한 그녀는 “우리한테 진짜 가족을 줬잖아요”라는 말로 그를 자책의 수렁에서 이끌어낸다. 단지 노래 한 곡만으로 위기를 극복해내는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은 다소 미흡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바넘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단원들이 이번에는 그의 운명을 상쇄시키는 다른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성질이 부여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붙지 않는다. 사람이던 사물이던, 혹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고 나서도 운명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운명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해적 룰렛과 같다는 소리가 아니라, 각각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조금 더 빛나고 싶어서 운명이란 단어를 가져온다고 보면 된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결혼한 연인만 “우린 운명이었나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말도 건네지 않을 정도로 싸우던 연인도 결혼하면 “결국 우린 결혼할 운명이었나봐요”라 하니까. 이번 달 말에 나는 영국으로 출국하는데, 내가 사지 못했던 상품이 출국 전날까지 팝업스토어로 열린다고 한다. 이건 운명 아닐까.

내가 아는 확실한 운명은 언젠가 우리가 죽게 된다는 것밖에 없다. 그 외에 살아있는 한 우리의 모든 운명은 바뀔지도 모른다. 대책 없는 모험가로 살라는 소리는 할 수 없지만, 본인의 삶이 너무 무료하다 싶으면 운명을 설정해보자. 백마탄 왕자님이나 야수를 인간으로 돌아오게 할 미인이 나올지는 장담 못한다. 그러나 뜻밖의 구원이 기쁘게 찾아올 수 있음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신명관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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