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산중의 절에 들어와 ‘불목하니’라는 직업으로 산지도 두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고 걷기 좋은 둘레길을 끼고 있어서 내방객이 꽤 많은 곳입니다. 특히 주말이면 절집 안팎이 사람몸살을 앓습니다. 내세울 만한 문화재나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게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고즈넉한 곳을 원했던 저로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사람살이가 바람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지요. 대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면 말 그대로 ‘절간처럼’ 고요해서 제 자신 속으로 한없이 침잠할 수 있습니다. 오롯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넘쳐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머무는 사찰도 그 ‘원칙’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주차장이든 길이든 담배꽁초가 널려있고, 마시다 만 커피나 음료수 병이 굴러다닙니다. 어떤 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쓰레기를 교묘하게 감추는지, 그것들을 찾아 치우다보면 마치 초등학교 때 하던 보물찾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픽사베이

어찌 절뿐일까요. 고라니, 다람쥐, 새와 나무들의 영토인 숲속에도 쓰레기가 널려 있습니다. 둘러앉아 먹은 그대로 종이 한 장 줍지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순하게 가지려 해도 욕이 저절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자신들의 집에서도 먹고 남은 것들을 저렇게 버릴까? 쓰레기가 아니라 양심을 버리고 간다는 자각조차 없는 행동에 미운 감정이 솟고는 합니다. 때로는 정중하게 지적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힐난의 눈길을 보내보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두운 곳만 있을 수는 없지요. 빛과 그림자는 늘 교직하기 마련이니까요. 뜻하지 않게 기분 좋은 장면과 만날 때도 많습니다. 여분의 비닐봉지를 가져와 남들이 버린 쓰레기까지 주워가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집니다. 아이들에게 예절과 질서를 조근조근 가르쳐주는 젊은 아빠의 얼굴에서 밝은 미래를 읽기도 합니다. 산 입구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는 빗자루를 가져다 놓고 늘 깨끗이 청소를 하고 갑니다.

그날도 그런 행운과 만난 날이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쯤 꽃밭에 물을 준 뒤 약사전에서 지장전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수각(돌우물) 쪽으로 향했습니다. 물은 잘 나오는지, 바가지는 제 자리에 있는지, 주변이 더러워지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제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에는 젊은 엄마 두 사람이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습니다. 바가지를 세숫대야 삼아서 손을 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잘 씻기려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옆에서 한 남성이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못에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때 소리를 지르거나 뭐라고 나무라면 제가 소속된 절에 누를 끼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한다는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니까요.

그렇게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저를 젊은 엄마 중 하나가 발견했습니다.

“왜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그게, 물 마시는 바가지에 손을 씻으면 다른 분들이 불쾌할 수도 있어서요.”

저는 최대한 미소를 띤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엄마가 가장 위대한 줄 아는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젊은 엄마들은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시에 사과를 하면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대들면 어쩌나 걱정이 되던 참이었거든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두어 시간 전 수각에 들렀을 때,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고 간 쓰레기와 수각 돌 위에 함부로 뱉어버린 껌 때문에 속상했었거든요. 쓰레기야 치우면 그만이지만, 누군가 들러 물을 마실 곳에 마구 버리고 간 양심이 못마땅했습니다.

좀 진부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네 조상들은 우물을 무척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없는 아낙네들도 우물가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늘 깨끗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런 인자를 물려받은 저는, 우물이 씹던 껌을 함부로 뱉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현실이 속상합니다.

얼른 사과하고 일어서는 젊은 엄마들이 고마웠습니다. 그 인연으로 그녀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제 지적을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궁금한 걸 묻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밝은 엄마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칠 거라는 믿음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온 마음을 기울여 그 아이들의 앞날을 축원했습니다. 일개 불목하니의 기도가 무슨 효험이 있겠습니까만, 마음 순해지는 저녁 무렵의 따뜻한 기도니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겠지요. 많이 피곤한 날이었지만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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