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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세이 퍼시픽의 유래[김부복의 고구려POWER 19]
김부복 | 승인 2019.05.29 05:25

[논객닷컴=김부복]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이라는 홍콩 항공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캐세이’라는 이름은 ‘키타이(Kitai)’에서 나온 것이다. ‘키타이’란 ‘거란(契丹)’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란’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라는 거란족 영웅이 세운 나라다. 오늘날의 만주와 중국의 하북 지방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요(遼)나라다.

거란이 세력을 떨치면서 ‘키타이’는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터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등에서 중국을 ‘키타이’라고 하더니, 영어로도 ‘캐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차이나’처럼 ‘캐세이’도 중국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픽사베이

당시 거란의 군사력은 대단했다. 병사들에게 1인당 말 3마리씩을 끌고 다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아무 때나 타지 못하게 했다. 말의 힘이 가장 왕성할 때 전투를 하기 위해 돌격명령이 내리고 난 후에야 말 위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말을 번갈아 타며 적진을 돌파했다.

또한 병사들을 3등급으로 구분했다. 가장 뛰어난 병사에게는 좋은 장비를 지급하고, 후방에 배치했다. 최전방에는 전투경험이 없고, 능력도 뒤지는 병사를 세웠다. 가운데 등급의 병사는 중간에 배치했다.

전쟁터에서 맨 앞에 서고 싶은 병사는 없는 법이다.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전투기술을 연마했다. 그래야 후방에 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전투력이 향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말에, 좋은 병사였다.

게다가, 이 강한 병사들이 적을 공격할 때는 주로 한겨울에 쳐들어갔다. 추운 곳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병사들도 추위를 잘 견뎠기 때문이다.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지키고 있는 고려를 침략한 것도 한겨울인 1018년 12월이었다.

전쟁이 없을 때에는 사냥으로 군사들을 단련했다. 그것 역시 한겨울이었다. “매년 정월 상순에 시작하여 60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다.

거란은 ‘타초곡(打草穀)’이라는 독특한 제도도 운영했다. 식량이나, 말먹이가 모자라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타초곡기(騎)’라는 부대를 동원, 부족한 식량과 말먹이를 ‘점령지역’에서 구하도록 했다. 글자 그대로 풀을 베듯 훑어버리는 약탈이었다.

원칙적으로는 병사들에게 각자 식량을 가지고 다니도록 했지만, 이는 원칙일 뿐이었다. 장기간 원정을 하다보면 식량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병사들은 1인당 말 3마리도 먹여야 했다. 그 많은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현지조달’밖에 없었다.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었다. 적의 식량으로 아군을 배부르게 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힘을 그만큼 약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는 그런 ‘소수민족’ 거란에게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송나라가 이른바 ‘전연의 맹(澶淵之盟)’이라는 조약에 따라 거란에게 ‘해마다 은 10만 냥, 비단 20만 필’을 바쳤을 당시의 조건도 ‘군의 급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변형된 타조곡’이었다.

이후, 송나라는 거란에게 바치는 ‘세폐’를 ‘은 20만 냥, 비단 30만 필’로 올렸다. 그러면서 그 방식도 ‘헌(獻)’이 아닌 ‘납(納)’이라고 했다. 공식적인 ‘조공’이 된 것이다. 거란은 중국에게 이런 ‘치욕’을 안겼을 만큼 막강했다.

‘손자병법’도 강조하고 있다.

“무기와 장비는 자국에서 가져다 써야 하지만, 군량은 적국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군량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적의 양식 1종(鐘)을 탈취하는 것은 자국에서 20종을 실어오는 것과 같다. 적의 사료 1석(石)을 탈취하는 것은 자국에서 20석을 실어오는 것과 같다.”

거란은 ‘발해 사람 3명이면 호랑이도 잡는다(三人渤海當一虎)’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상무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나라, 발해마저 제압했다. 발해는 ‘백두산 폭발’이라는 엄청난 ‘내우(內憂) 때문에 경제와 식량 생산 등이 마비된 상황에서 거란과 싸우다가 결국 사라져야 했다. 발해의 유민들은 그러면서도 무려 150년 동안이나 나라를 되찾기 위한 ‘복국(復國) 투쟁’을 펼쳤다.

그런데, 이 막강했던 거란을 통솔하고 다스렸던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구려다.

고구려 때 거란은 서쪽으로 유연, 남쪽으로 북위 등과 마주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수왕 때 고구려는 그 거란을 공격, 당시 그들의 ‘8부 연맹’을 깨뜨려버렸다. 거란족 1만여 명이 고구려를 피해서 북위 쪽으로 밀려났지만, 대다수의 거란족은 고구려의 지배체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문자왕 때에는 거란을 지원, 북위의 변방을 공격하도록 했다. 노략질을 당한 북위가 발끈해서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 항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가 거란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다. 평원왕 때에는 돌궐의 침략을 받은 거란이 고구려에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고구려는 이렇게 거란을 통제하고 조정했다. 필요할 경우 거란의 군사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거란의 말과 산물 등을 공물로 받기도 했다. 거란의 세력이 커져서 ‘캐세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 이후’였다. 

김부복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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