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려 한다. 곡은 이미 나왔다. 그런데 멤버 하나가 부족하다. 원래 있던 기타리스트가 베이스를 치겠다고 하니 기타를 쳐 달라.’

이런 부탁을 받았는데 거절했다. 오랫동안 기타를 안 치기도 했고, 주야장천 펑크만 해서 다른 장르는 쳐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난 매정하지 못했다. 곡을 쓴 친구에게 빚이 있었다. 몇 년 전 무대를 함께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얼마 앞두고 간 락페스티벌에서 뛰어놀다 다리가 부러져 펑크를 내버린 것. (▷관련기사: 오른발잡이의 왼발훈련기)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에 급히 입을 막았다. 그렇게 합주가 시작됐다.

Ⓒ픽사베이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어떻게 쳐야 할지도 모르겠고, 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겠고. 자존심이 상했다. 밤잠을 쪼개어 비슷한 장르의 곡을 찾아 듣고, 유튜브로 기타리스트의 손 모양을 하나하나 봐가며 황급히 배워나갔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었으면 기타를 못 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난 다음 합주에서도, 그다음 합주에서도 어색한 모습으로 기타를 잡고 쩔쩔맸다. 그런 내 기타를 살려보겠다고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저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다른 멤버들마저 달려들어 고민했다.

덕분에 나쁘지 않은 결과가 있었다. 합주를 하는 동안엔 온갖 번뇌와 고통이 소리 없이 아우성쳤지만, 수상과 함께 오랜만에 합주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남은 돈으로 회식 한 번은 할 수 있겠다는 기쁨을 선사받았다. 하지만 기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합주 동안의 고통은 내가 어떤 잘못을 했길래 하는 반성을 요구했고, 기본기에 소홀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덕분에 나는 집으로 달려가 평소 존경하고 있던 기타리스트 선생님의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레슨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비어있는 시간대가 있었고 바로 레슨을 예약했다.

나는 나의 실력 부족을 ‘취향’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한 번씩 들어보고 쳐보기도 하면서 내 취향을 찾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펑크’라는 장르에 꽂혀 음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다른 분야를 모른 채 살아가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의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펑크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다른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어야 했다. 그걸 부정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잘하는 장르에서 만큼은 손에 꼽을만할 정도의 실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어야 했다. 근데 난 둘 다 아니었다.

너무 빠른 취향은 취향이 아니었다. 취향이라는 착각은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장르와,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했다. 취향이라는 포근한 이불속에 숨어서 ‘취향인데요? 집 밖은 위험하다는데 존중해주시죠?’ 하는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다른 장르도 들어봐야 한다는 조언은 한 귀로 흘렸다. 안락한 이불속이 너무 따뜻해 내 가치관을 의심하는 데 게을렀다. 내가 그렇게나 싫어해 마지않던, 귀를 막은 채 본인의 소리만 주장하던 사람들과 하나 다를 게 없었다. 곧 날을 잡아서 뒤풀이를 한다는데 가서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하마터면 꼰대의 길을 갈 뻔 한 나를 구제해줘서 고맙다고. [청년칼럼=이광호]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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