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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홍준 답사기[이명렬의 맹렬시선]
이명렬 | 승인 2019.06.04 11:34

[청년칼럼=이명렬]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고 건대 입구로 향했다. 다음날 공휴일이라 인근 술집은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기름진 삼겹살 냄새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캠퍼스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을 건너뛰고 발길을 재촉한 덕분에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한적한 캠퍼스 분위기와 달리 지하 공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어수선했다. 출발 시각이 임박한 공항의 여행객들처럼 한 옥타브 올라간 재잘거림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서둘러 티켓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큰 박수와 함께 반 백발의 강연자가 등장했다. 유홍준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명렬

처음이지만 익숙한 만남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출간된 것이 1993년이다. 무려 26년이 훌쩍 지났다. 남도 답사 일번지를 주제로 시작한 답사기는 전국을 돌고 북한, 일본을 넘어 중국에까지 이르렀다. 실로 대장정이다. 매 권마다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전국의 문화유산들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수학여행으로 무심코 들르던 불국사 석축의 그랭이 공법과, 울퉁불퉁 하다고 탓하기만 했던 경복궁 박석에서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이끌어낸 조상들의 야무진 손길에 감탄하게 된다. 문화유산들도 직접 만나보면 감동이 배가 된다. 유홍준 선생님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가끔 뉴스와 예능에서 특유의 달변을 들을 수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나만의 유홍준 답사기를 갖고 싶었다.

강연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먼저 '중국, 돈황’이라는 행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한국, 일본의 답사기를 쓴 마당에 중국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쉬웠고, 답사기의 출발점도 중국의 사대주의와 복잡한 민족 감정의 편견에서 벗어나 동서 교류의 출발점인 돈황으로 잡게 되었다는 내막을 털어놓았다. 나도 중국 답사기가 출간된다고 해서 중국 역사가 소용돌이치던 북경과 장안과 같은 수도에서 시작될 줄 알았는데, 변방인 돈황에서 시작된 점이 의외였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돈황은 오롯이 중국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의 발견, 새 깃털 모자를 쓴 신라 사신이 그려진 벽화, 고구려 유민과 고선지 장군의 활약 등 우리 민족과도 다양한 인연이 있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비행기를 타고 쉽게 질러갈 수 있는 길을 힘들게 버스를 타고 답사를 이어간 이유도 설명했다.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씩 이동하는 것은 실로 힘들고 지루한 여정이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지났을 길을 함께 지나며 그 시대의 고민과 정취를 담뿍 담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창밖으로 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다양한 색으로 뒤덮이는 실크로드 평원과 명사산, 월야천의 고즈넉한 풍경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선생님은 이름 명(名)이 아닌 울림 명(鳴)으로 바꾼 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는 말로 감흥을 대신했다. 원래는 명성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나, 울림이 헛되어 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변용으로 감동을 더 했다.  

이어 돈황의 주요 벽화, 불상, 건축의 사진과 함께 역사적 배경에 대한 해석이 곁들여졌다. 시대별로 달라지는 불상의 얼굴 표현과 옷 주름에서 당대의 문화 분위기와 문명 간의 교류를 읽어내는 눈썰미가 놀라웠다.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에서 유행하던 물에 젖은 옷 주름이 돈황 불상을 건너 석굴암 본존불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은 짜릿한 전율을 안겨다 주었다. 유튜브, 페이스북이 없던 수천 년 전에도 전 세계를 유행하는 문화 트렌드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각자의 문화권에서 창조적으로 수용한 결과물들이 실크로드의 위대한 유산으로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어느 것이 더 뛰어난 유산이 아니라, 각자 주어진 환경과 맥락 속에서 나름의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가 굳이 중국의 문화유산을 보고 배우는 것도 이를 통해 우리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홍준 선생님은 석굴암 본존불이 미학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의견은 빼놓지 않으셨다.  

2권 분량의 책에 담긴 많은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들을 발췌하여, 현장의 흥분된 감동을 최대한 전달해주고자 애쓰는 선생님의 마음이 감사히 느껴졌다. 누워있는 불상을 보며 수면 내시경을 받는 것 같다는 유쾌한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돈황석굴이 약탈당하고, 불상과 경전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수많은 경전들이 흩어지며 돈황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키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지만, 제자리에 있어야 할 유산들이 타의에 의해 흩어진 모습이 우리네 식민지 시절의 역사와 닮아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1시간 30분의 짧은 강연이 끝났다. 이어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서둘러 뛰어 나간 덕분에 1등으로 줄을 섰다. 당당하게 사인을 받으려는 찰나 옆에 있던 운영자 분이 큰소리로 외쳤다.

"대기표 받으신 분들은 번호 순서대로 따로 줄을 서주세요"
알고 보니 강연 전에도 사인회가 열렸는데, 시간이 부족해 미처 사인을 받지 못한 분들에게 배부한 대기표가 100명에 달한다고 했다. 결국 난 101번인 셈이다. 힘이 쫙 빠진다. 시간은 9시가 넘었고 저녁도 먹지 못한 터라 허기가 졌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선생님은 일일이 책 주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유려한 붓글씨로 써 내려 갔다. 기다리는 모든 분께 정성 들여 써가느라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명렬

이윽고 10시가 다 되어갈 때쯤 대기표 순번이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선생님께 가볍게 묵례를 하고 사인을 받았다. 책을 들어 보니 이게 웬걸, 이명렬이 아니라 이영렬로 쓰여있다. 조그만 포스트잇에 미리 이름을 적어내는데, 애매하게 보이는 내 글씨체가 문제였다. 이미 내 뒤로도 많은 분이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어 다시 받기도 무안하다. 이것도 좋은 추억이라 생각하고 사인회장을 나섰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 캠퍼스의 밤바람은 상쾌하게 산들거렸다. 배에서 꼬르륵대는 소리가 우렁차지만, 오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무언가 간직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돌로 만들어진 수천 년 전 불상의 손끝에서도 당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부대낀 추억의 밀도는 훨씬 진하다. 오랜만에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의 대사가 떠오른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20년 넘게 유홍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의 시간들이 쌓여, 오늘의 만남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답사도 결국 만남이다. 옛사람들이 쌓아 올린 시간과 노력을 마주하며, 그 감동을 나누는 것이다. 유홍준 선생님은 만남의 폭을 다양하게 넓혀준 유능한 중매인이다. 중매료는 책 한 권 값이면 충분하니 나로서는 남는 장사다. 앞으로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할 새로운 만남이 더욱 기대된다. 나의 유홍준 답사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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