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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무엇을 타고 흐르는가[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박정애 | 승인 2019.06.05 10:55

[논객칼럼=박정애] 인덕션 위에선 구수한 된장국이 끓고 있고 에어프라이어에선 기름진 고등어가 구워지고 있다. 씩씩거리던 전기밥솥은 힘차게 김을 쏘아 올린다. 그 사이 김치 냉장고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를 꺼내 썰고 어제 먹다 남은 계란말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주방을 가득 채운 열기에 목이 마르다. 정수기 버튼을 눌러 미온수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저녁 준비가 한창인 주방의 풍경은 가족을 향한 주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전기로 가득 차 있다.

비단 주방뿐이랴. 이젠 세탁기를 넘어 건조기에 빨래를 말린다. 청정한 공기마저도 가전제품에 의존한다. 이 글 역시 노트북 화면 위에서 작성되고 있다. 몸에 피가 돌아야 생명 유지가 가능하듯 삶에 전기가 흘러야 생활이 가능하다. 일상의 든든한 파수꾼인 전기. 과연 그 출처는 어디이고 무엇을 타고 흐르는 것일까.

밀양, 하면 송전탑이 떠오를 정도로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그 밀양의 어르신 몇 분이 발전소와 송전탑이 건설된 지역들을 직접 찾아가, 보고 느끼고 깨달으신 바를 글로 기록하셨다. 그리고 그 기록은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대한민국 ‘나쁜 전기’ 보고서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대한민국 전기의 본색을 밝혀볼까 한다.

Ⓒ픽사베이

대한민국 인구의 40% 이상이 모여 살고 있는 수도권 전력공급의 요충지는 어디일까? 바로 충남이다. 당진, 보령, 태안 세 곳에 각각 8기씩 있고 서천에 있는 2기까지 모두 합하면 26기의 화력 발전소가 충남에 모여 있다. 충남의 전력자급율은 266. 7%에 이른다. 즉 충남은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2.6배를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서울의 전력자급율은 4.7%에 불과하다.

발전소를 지어도 송전탑이 없으면 전력공급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발전소가 많은 지역엔 송전망 건설이 옵션처럼 따라붙게 된다. 그리고 송전망이 넉넉히 설치된 지역은 추가로 발전소를 짓는 데 유리하다. 추가로 송전탑을 짓는 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 번 발전소가 들어오면 발전소, 송전탑, 발전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비극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논리는 핵발전소 건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문제는 이처럼 발전소와 송전탑이 밀집돼 있다 보면 그 지역의 공기와 수질 오염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약 20년간 핵발전소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역학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갑상선암이 지역 주민(고위험군) 여성들에게서는 10만명 당 61.4명. 근거리 대조군 여성에게서는 43. 6명, 원거리 대조군 여성에게서는 26.6명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에게서는 2.5배 정도, 근거리 대조군에서는 1.8배 정도의 갑상선 암 발생 위험도가 높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예로 월성 핵발전소 주변 50가구를 조사해본 결과 갑상선암 환자 8명, 다른 암 환자 11명, 갑상선 질환을 앓는 사람이 4명이었다. 이 중 갑상선 암 및 질환은 전국 평균의 60배에 달한다고 한다.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핵발전소 굴뚝에서 기체 상태로 나오는 삼중수소인데 월성의 경우 경주 시내보다 20배, 30배나 농도가 더 높게 나온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암 발병률은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건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높게 나타났다.

화력 발전소이든, 핵발전소이든, 송전탑이든 외지고 가난하고 늙고 힘없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건설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분들에게 강요된 희생을 바탕으로 도시인들은 편리한 전기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전기에 그분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과학자 돈 피츠(Don Fitz)는 ‘후쿠시마, 대안은 태양에너지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이 기후변화에도 대응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에너지 사용량을 약간 축소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완전히 생활 패턴을 바꿔서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의장을 지낸 독일의 볼프강 작스(Wolfgang Sachs) 역시 『유럽의 녹색화』라는 책에서 서구 사회가 에너지 사용량을 현재의 1/10, 즉 90% 정도까지 극단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누구나 지속가능한 삶을 바란다. 하지만 그런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적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가전제품들이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전기는 철저한 ‘희생의 시스템’ 하에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공급자의 고통이 암막커튼에 가려진 채 소비자의 편리만을 앞세우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벌써부터 날이 무덥다. 바야흐로 에어컨의 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나 부채를 사용하고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전제품들 중 한 가지라도 사용을 중단할까 한다. 이런 실천이 할매 할배들의, 그리고 이 지구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씨앗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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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boc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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