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논객칼럼=이영환]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하면서 동시에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것은 20년도 채 안 되지만, 이제 인터넷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메일만 보더라도 인터넷 없는 삶이 얼마나 불편할지 절감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것은 몇 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몸의 일부가 된 듯하다. 스마트폰을 두고 외출하거나 정상 작동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과연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 긴급하고 중요한 뭔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픽사베이

인류가 현재까지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개미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이것들을 종합해 인간조건(human condition)이라 불렀다. 오늘날 인류를 존재하게 만든 선행조건들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용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인간조건이 과거와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진화란 특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학자들은 진화 과정 자체를 달리 해석하면서 진화에는 나름 어떤 방향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어떤 입장을 취하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진화란 다양성과 복잡성이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인간이라는 종에 한정해 보자면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점점 다양하게 세분화되어왔고, 인간이 만든 조직과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촉진한 주요 동인은 시장의 발달과 기술혁신이었다고 본다. 시장을 통해 수익을 실현할 수 있기에 기술혁신의 인센티브가 생겨났고,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서 시장경제가 발전해왔다는 의미에서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현상으로 직업의 다양성과 조직의 복잡성이 창발했으니 이 둘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두 가지 측면에 앞으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사회는 더욱 다양해지면서 동시에 복잡해질까, 아니면 피크를 지나 오히려 획일화되고 단순해지는 방향으로 선회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진화의 논리상 당연히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질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인공지능 기술 때문이다. 우선 필자는 앞으로도 사회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과정이 지속되는 동시에, 사람들 간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미래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지능으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만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시점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복잡한 사회는 인간을 점점 더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한편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앞으로 사회는 오히려 점점 더 단순화될 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할 것이므로, 이 점에서는 일정 수준 다양성이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인공지능을 장악한 집단과 이에 끌려가는 집단으로 양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매사 인공지능에 의존함으로써 사고의 획일화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 할 수도 있다. 이 모두 다양성을 후퇴시키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이 예상하는 것과는 반대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간 스스로 진화의 물줄기를 바꾸는 셈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메가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그저 두고 볼 뿐이다. 마치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그네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뭔가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우리 생활이 몰라보게 편리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도 종종 배달앱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는데, 굳이 외출하는 번거로움 없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편리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사람에 따라 용도는 다를망정 전반적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포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 침투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우리 대신 생각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기 시작했기에 우리는 마치 번거로운 일에서 해방된 듯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서 양도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바이다. 우리가 진정 기계의 주인으로서 위상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강화해야 한다.

만일 이런 노력을 포기한다면 이는 곧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양도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이것은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 바로 전체주의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도 같은 논리였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혼란과 무질서를 감당할 수 없었던 독일인들이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 히틀러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전공한 예일대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는 저서 『폭정』에서 인터넷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한 다음 말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을 분별하는 능력은 비로소 당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공동의 지식에 대해 모두가 신뢰를 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진실을 조사하는 개인은 사회를 건설하는 시민이며, 그러한 개인을 싫어하는 지도자는 잠재적 독재자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스나이더가 말한 독재자 가운데 인공지능 독재자가 포함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점점 복잡해져가는 가운데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사고방식이 점점 더 획일화되어 가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려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