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까지도 생명의 충만감을 일깨워주는 기쁜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지금 여기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들은 무엇인가? 살아있으면서도 마치 죽은 상태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느껴진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구태여 소리 내어 ‘죽지 못해 살지요’라는 말을 읊조리지 않더라도 별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기쁨을 느끼기가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돈 벌기 위한 수단밖에 안 되는 무의미한 일을 계속해야 한다거나 막연한 의무감에 묶여서 그럭저럭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엄청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기쁨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억눌리는 일이다.

매 순간 쉬지 않고 울리는 심장박동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움직임이다. 심장이 뛸 때마다 행복감의 파동이 의식세계 깊숙이 울리게 하려면 무엇을 하면 되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기쁨을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살다보면 누구나 다 심히 불행하지는 않다손 치더라도 무료한 시간이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때가 있다.

위험한 일,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짓거리’를 하면서 ‘짜릿한 전율’을 맛보는 경험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사람들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택의 가능성으로 다가 올 수 있다. 불행하게도 자신이나 남에게 해가 되는 선택을 할 경우에 도박이나 마약 등 불법인 줄 알면서도 남몰래 해보는 모든 유형의 은밀한 행동들이 개인생활 영역 밖으로 튀어나와서 세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기도 한다. 개인이 저지르는 중독성을 띠는 위험한 행동들은 사회 전체에까지 해로운 영향을 주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픽사베이

자극을 유발시키는 중독 위험성이 전혀 없이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긍정적이고 보람찬 삶의 생동감을 느끼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체험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중심을 잃지 않고 제 정신 차리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 혼란스러운 사회생활 속에서 어찌해야 건강하고 행복한 자아정체성을 오염되지 않은 본래 모습대로 지키며 살 수 있는가? 물질주의 물결에 떠밀리는 가운데 가상적으로 투사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도 자신만의 잔잔한 기쁨을 느끼며 진정한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누구나 돈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기쁨이나 삶의 의미를 주는 생각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실천해 볼 수 있겠다. 사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크고 작은 의미 있는 경험이 되게 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은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 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젊은이가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면 ‘나는 그냥 수수하게 생겼지만 이대로 매우 개성 있게 생긴 내 얼굴이 참 좋아’라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일깨움으로써, 자신이 생긴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얼굴모습에 긍정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누구나 다 삶에 생동감을 주는 생각들을 날마다 자신에게 선물하는 습관을 통해 건강한 의식세계의 주인으로서 자신만이 가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영역을 조금씩 채워갈 수 있다. 날마다 새 작품을 시도해 보는 예술가처럼 각자 자신의 의식세계 안에서 자기 존재감을 생동감 넘치게 창조할 수 있다. 전문예술가라는 멋진 직업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식세계 속에서 창조적 잠재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매일매일 더욱 더 살맛나는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일을 누구나 다 실천할 수 있다.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나치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타의에 의해 노예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자의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몸부림쳤던 그의 의지력 때문이었다. 포로생활 후에 프랭클박사는 정신과의사로서 의미치료법(로고테라피, Logo Therapy)을 개발하여 불안하고 불행한 의식 속에 잠겨있는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랭클박사의 이 글처럼 인간에게 닥친 어떤 극심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은 그 삶을 견뎌내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는 체험을 평범한 일상생활을 통해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이 평소 생활 속에서 의미나 기쁨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는 개체적인 의식세계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실 습관적인 행동패턴 속에서 개미 쳇바퀴 도는 듯이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할 경우에는 삶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생동감 있는 의식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적인 습관은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일상생활을 통해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언어체계가 개체의식 속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명의식을 가진 직업적 종교인이나 영성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삶의 에너지, 사랑스러운 사람, 타인에 대한 관심과 희생, 목적을 이루기 위한 땀과 용기와 같은 밝고 힘찬 말들로 의식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깜깜한 굴 조개껍질 속에서 고뇌하는 작디작은 모래 한 알처럼 외로운 삶의 여정에서 각자 경험하는 어둠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 삶을 주도해 나가는 책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있다. 누구나 다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로 새로 태어나는 기쁨의 생동감을 누리기까지 쉽지 않은 삶의 과정을 살아내야 한다. 가까운 식구나 친구 혹은 사회복지사와 같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도움을 잘 활용할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식세계를 자발적으로 밝게 비추려는 의지와 노력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표출해낼 수는 없다.

삶의 의미나 기쁨을 선물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은 말을 통해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소통한다. 인간관계의 質(질)은 관계형성에서 활용하는 언어의 힘과 의식세계의 수준에 달려있다. 의사소통은 보통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하는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하는 말의 중요성을 누구나 다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의적으로 자신의 의식세계 속으로 투입하는 건강한 의사소통기술이야말로 누구나 스스로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자기개발 영역이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모든 역할이나 기능이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어 속에는 조상대대로 내려 온 민족혼과 무의식적인 집단적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 중의 하나인 나바조(Navajo) 사람들은 호조(hozho)라는 말을 쓰는데 이 한 마디 말에 평화, 행복, 아름다움, 균형, 조화라는 뜻이 다 들어 있다고 한다. 사실 호조라는 이 나바조 말은 진실성과 모든 미덕들을 모두 다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나바조 사람들이 쓰는 특정 개념 한 가지로서 ‘알케에 나 아시(Ałkééh na ashi)’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 말은 빛의 스펙트럼, 구름, 그리고 많은 신성한 바람의 근원을 묘사하며 이 개념은 맨 처음에 나바조 사람들에게 알려진 말을 대표한다고 한다. 다른 많은 인디언 종족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언어를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전통문화적인 의미를 지닌 영성적 개념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으며 언어를 통한 믿음까지도 잃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나바호 인디언 언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은 덕택에 현대인들도 그들의 빛나는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신문화유산으로서 한글이 갖는 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 ‘말모이’에서 보여진 것처럼 한국인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사전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었고 그 덕분에 한국어와 함께 한국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의 심오한 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한글이 보유한 민족문화적인 우수성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필자는 순수 한국말이 뜻하는 바를 언어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제대로 알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영혼(soul) 혹은 영(spirit)을 의미하는 순수 한국말로서 ‘얼’이라는 말이 있고 이 ‘얼’을 담고 있는 ‘굴’이라는 뜻으로서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얼빠진 사람이 되어 얼빠진 행동을 하고 살지 않으려면 얼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평소에 한국인의 얼이 밝게 빛나는 얼굴들을 보고 다니는 적지 않은 기쁨을 누리고 산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분들에게 밤늦은 시각에 전철을 타보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비록 대부분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고 다른 승객들에게는 서로 별로 관심이 없지만 늦은 시간까지 피곤하지 않은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밤 시간에도 전철 속에서 새로운 기운으로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열심히 새로운 정보를 얻는 즐거움으로 빛나는 얼굴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얼굴들 중에는 요즘 한국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방탄소년단이 최근에 부른 ‘아리랑’이 담긴 유튜브 음악동영상을 보고 있는 경우도 있겠다. ‘아리랑’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은 나를 깨달아가는 기쁨을 뜻하는 순수 한국말이라고 한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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