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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아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톨스토이 부활(Voskresenie)
김호경 | 승인 2019.06.13 11:06
1905년 간행된 <부활> 책 표지 Ⓒ김호경
톨스토이의 싸인 Ⓒ김호경

동양적 은둔에서 벗어난 대영토의 나라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400㎞를 가면 보로네슈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곳을 빙 둘러 흐르는 강이 돈(Don) 강이다. 미하일 숄로호프의 장편 <고요한 돈강>은 이곳을 무대로 한다. 그곳에서 또 남쪽으로 40km를 더 가면 코스텐키(Kostenki)라는 마을이 있다. 1879년에 처음으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된 이래 다량의 유적이 출토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현생인류는 그리말디인(Grimaldi man)으로 추정된다. 약 4만년 전에 살았을 것이며, 이[齒]의 구조나 튀어나온 턱, 긴 팔로 보아 니그로(Negroid) 인종의 조상으로 파악된다. 두개(頭蓋)의 모양이나 크기 등으로 미루어 본다면 크로마뇽(CroMagnon)과 같은 인류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러시아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러시아는 장구한 시간 동안 다양한 사건과 변혁을 거치면서 엄청난 영토를 차지해 한때 세계 1~2위를 다투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불과 300년 전만 해도 무지몽매하고 야만적인 국가였다. 러시아의 바탕을 이루는 키예프 공국(Kievskaya 公國)은 9세기 말에야 겨우 세워졌다. 250년 동안 몽고의 지배를 받다가 1300년대 들어 독립했으며, 16세기 후반에 시베리아로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절대왕정과 농노제에 의해 유지되던 러시아를 근본적으로 개혁시킨 사람은 표트르 1세(Pyot 피터 1세, 1682~1725)이다. 대대적인 근대화에 착수하여 서유럽의 제도와 문화, 기술을 도입했고, 바다로의 출구를 찾아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승리해 발트해 연안을 획득했다. 근대적 군대 양성, 행정조직 정비, 세제 개혁 등을 실시했고, 산업을 육성시켰다. 그리하여 동양적 은둔에서 벗어나 유럽 열강의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표트르 1세는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통치자로 인정받는다. Ⓒ김호경

‘인물의 창출’이 걸작과 졸작의 갈림길

러시아는 고전음악과 문학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쇼스타코비치,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미하일 글린카, 스트라빈스키, 차이코프스키 등이 고전음악의 대가들이다. 반면 철학자와 사상가는 미미하며 경제학자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미술 부분도 약하다고 할 수 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화가는 샤갈과 칸딘스키뿐이다. 그나마도 샤갈은 프랑스에서,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활동했다.

그에 비해 문학 부분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세계적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각 나라에도 골고루 특정 분야를 나누어 준 것 같다.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이다. 문학에서 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고, 두 사람은 세계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두 사람의 소설은 재미가 있으며 역사, 철학, 인물(주인공)이 담겨 있고 문장력 또한 뛰어나다. 모든 소설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가?라고 반박할 수 있으나 인물을 창출해내지 못한 소설이 더 많다. 걸작과 졸작의 차이점은 인물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난다. 내 관점에 의하면, 전 세계 수많은 소설의 80% 이상은 인물을 창출해내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이다. Ⓒ김호경

6개의 이름으로 불린 여자

그녀는 비참한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스빠손나야(구원받은 아기) - 첸카로 – 카치카 – 카츄사 - 류보브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정식 이름은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이다. 7년 동안 사창가에서 공인 받은(당시 러시아는 창녀 제도를 인정했다) 창녀로 활약했다. 18살에 여주인의 조카이자 부유한 공작(公爵)인 대학생에게 처음으로 처녀를 잃었다. 그 보상으로 100루블을 받았다. 이후 늙은 경찰서장 – 산림 감독원 – 중학교 6학년 남학생 – 늙은 소설가- 젊은 점원을 거쳐 사창가 창녀가 되었다.

“검은 비로드로 장식한 밝은 황금빛 비단옷, 등과 앞가슴을 깊게 판 깃없는 야회복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자기를 배신한 사나이(대학생)와 자기를 버리고 간 점원과, 그리고 그 외에 자기를 괴롭힌 모든 남자들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7년 동안 그녀를 거쳐간 손님은 젊은 남자, 중년 남자, 애송이, 늙은이, 독신자, 기혼자, 장사치, 점원,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타타르인, 부자, 가난뱅이, 건강한 사람, 군인, 문관, 대학생, 중학생 등등 온갖 계급과 연령, 갖가지 성질의 남자들이었다.

8년째가 되던 26살 때 2급 상인 페라폰트 예밀리야노비치 스멜리코프를 만나지 않았다면 적어도 7년은 더 창녀 생활을 했을 것이며, 그 후에는 포주가 되어 다른 비참한 여자들을 꼬드겨 창녀가 되도록 만든 후 돈을 뜯어먹는 삶을 연명하면서 천수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태평스레 놓아두지 않았다.

1905년 간행된 <부활>의 삽화. 여 주인공 카츄사의 모습이다. Ⓒ김호경
Ⓒ김호경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근위대 중위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플류도프 공작은, 부자이고 사회적 명망이 높은 코르차긴 일가의 딸 M. 코르차기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그렇게 소문이 났다). 그럼에도 귀족 회장의 부인 마리야 바실리예브나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장교가 마리야의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어서 곧 해방될지도 모른다는 희망(한편으로는 질투심)을 안고 있었다. 대토지를 소유한 네플류도프는 “토지는 사유재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을 한때 갖고 있었기에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188X년 4월 28일, 코르차기나와 미술전람회에 가려 했으나 배심원으로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 300루블을 내야 했으므로 약속을 취소하고 재판정으로 향했다. 그곳 배심원석에서 독살사건을 일으킨 3명의 피의자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중 주범인 마슬로바(카츄사)와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네플류도프는 두 번째 만남을 떠올렸다.

속옷만 입은 채 두 팔을 드러내 놓고 있는 카추샤를 번쩍 안아들고 문 밖으로 무턱대고 나왔다.
“어머나, 왜 이러세요?”
그녀는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그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그녀를 자기 방으로 안고 들어갔다,
“아이, 안 돼요. 놓아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온몸은 그에게 더욱 바싹 다가갔다.

네플류도프는, 그녀는 죄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형법 제771조 제3항, 제776조, 제777조 및 형법 제28조에 의거해 마슬로바는 ‘공민권과 일체의 재산권을 박탈 당하고 4년의 징역’에 처해진다. 네플류도프는 중얼거린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두 번째 남자와 첫 번째 남자

재판이라는 것은 아무리 공정하게 진행된다 하여도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쓴 라블레(François Rabelais)는 “주사위를 던져서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이긴다”는 어이없는(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이야기를 했다. 마슬로바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배심원들이 유죄/무죄 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을 지루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에 따른 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내려진다. 예컨대, 한 여자가 5명의 남자에게 강제 윤간을 당했다. 이 경우 5명이 똑같은 벌을 받지는 않는다. 첫 번째 남자는 “나는 강간을 했을 뿐 윤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남자는 “나는 두 번째 남자를 따라 했을 뿐이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윤간은 두 번째 남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가 가장 큰 벌을 받을 수 있다.

마슬로바의 삶에서 두 번째 남자는 늙은 경찰서장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장 큰 벌을 받아야 하지만 모든 근원은 첫 번째 남자 네플류도프에게 있다. 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에 유부녀와의 불륜을 청산하고 죄없는 마슬로바를 보살피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녀의 인생이 순수하고 평범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한다.

구원받아야 하는 사람이 마슬로바인지 네플류도프인지는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만약 마슬로바가 구원을 받았다면 생애 첫 이름인 ‘스빠손나야’로 부활하는 것이리라.

* 더 알아두기

1.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이 소설에서 러시아정교(Russian Orthodox Church)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부(宗務部)로부터 파문당했다. 톨스토이는 “신을 거역해서 교회를 버린 것이 아니라 영혼의 온 힘을 다해 그를 섬기기 위해 버렸다”고 말했다.

2. 1909년 남아프리카에서 인권 활동을 하는 인도인 변호사 간디가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냈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신을 주고받았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톨스토이 작품에서 유래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는 문학속의 가르침을 실천한 ‘위대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3. <부활>은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보다 문학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지만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부활>이 적합하다.

4. 톨스토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벨평화상에 4번, 문학상에 16번 후보로 올랐으나 탈락되었다. 그에 대한 추론글이 많은데 진실이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노벨위원회가 보수적”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82세의 나이에 집을 떠나 작은 간이역 아스타보프에서 사망한 행력(行歷)으로 추정컨대 톨스토이는 노벨문학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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