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마실가다#

7080 세대들에겐 듣기만해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이웃 마을에 놀러간다’에서 비롯됐다는 마실. TV는 물론 진공관 라디오마저 흔치 않던 시절엔 저녁을 먹고는 이웃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마실을 다녔습니다.  뭐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낮엔 농사일로 서로 바쁘니 잠자리 들기 전에 얼굴 한번 보고 저녁인사 나누는 것이었지요.

오늘 영수하고 철수네 마실 다녀오면 내일이나 모레쯤 철수가 영수하고 우리 집으로 마실오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일종의 소통이요, 정보와 교분나눔의 한 방편이었던 겁니다.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라는 TV프로(KBS)가 있습니다. 탤런트 김영철씨가 동네를 돌며 만나는 주민들과 살아가는 얘기를 도란도란 주고 받는 이 프로는 그의 구수한 입담까지 곁들여져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 그 옛날 ‘마실의 추억’을 돌려줍니다.

‘(이)마을 가고, (저)마을 가는’ 행동을 ‘마을가다’라고 했고 이것이 ‘마실가다’로 진화했다고 하죠.  ‘마실가다’가 표준어 자리를 꿰찼지만 그 전엔 ‘말가다’란 줄임말로 더 쓰였습니다. 마실이 마을의 방언으로 있다가 '마을'과의 차별화 차원에서 표준어 자리에 오른 게 아닌가 합니다.

‘마을’ 역시 실 생활에선 ‘말’로 축약돼 불렸습니다. 아랫말 웃말 건넌말 새말 등등... ‘말’은 이북에선 ‘몰’로도 변합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마을과 비슷한 ‘고을’ 역시 ‘골’(왕릉골, 남산골)로 불렸습니다. 이 고을(谷)과 마을을 뭉뚱그린 개념이 동네쯤 됩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동네 한바퀴’)

노랫말에서 보듯 동네는 ‘바둑이와 함께 돌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달동네 꼬방동네 우리동네 니네동네 동네방네 동네북 동네목수 동네병원 동네의사 등등...동네는 다양한 접두/접미어로도 쓰였습니다. 달동네는 산비탈에 지어져 저녁 어스름이 지면 다른 동네보다 달이 일찍 떠오른다 해서 그리 불렀습니다. 꼬방동네(판자촌의 일본어인 ‘하꼬방’에서 온말)라고도 불렸으며 살림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주로 살았습니다.

동네는 본래 동리(洞里)가 변한 표현이라는 게 통설입니다. 공간개념이 강하며 동네를 구성하는 각각의 집을 누구~누구네(영수네 철수네)라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네~ 누구네~ 의 ‘네’가 한곳(同)에 모여 있어 ‘동네’가 됐다는 설(說)도 있습니다.

철수네는 철수와 철수 가족이 사는 집을, 또 말쓰임에 따라 철수네 식구 전체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철수네 좀 다녀올 께~”하면 철수네 집이란 얘기고 “철수네 오늘 서울 갔어~”하면 철수네 식구를 뜻했습니다. 공간개념과 함께 구성원을 지칭하는 복수의미어로도 쓰였던 것이죠.

니네 걔네 얘네 자네 등 상대를 가리킬 때도 ‘네’가 쓰였습니다.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택지조성을 위해 분묘이장을 하던 중 한 남자의 관에서 한통의 한글편지가 발굴됩니다. 미라의 주인공은 이응태(1555~1586)로 부인(원이엄마)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적어 1586년 7월 16일 관속에 함께 넣어둔 것이었습니다.

‘원이엄마 편지’엔 남편을 지칭하는 ‘자내(자네)라는 표현이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지금은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주로 쓰는 호칭이지만 그 당시만해도 남편을 높여 자네(자내)라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대등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남존여비가 강했던 유교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좀 떨어집니다.

이밖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 ‘네’가 붙는 표현으로 아낙네(아낙+네),여편네, 나그네 등이 있습니다.

나그네(나그+네)의 ‘나그’는 ‘나간’에서 온 것으로 ‘나간이’란 뜻이라고 하죠. ‘네’가 사람을 지칭하는 점에서 ‘철수네’ ‘영희네’의 ‘네’와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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