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학명은 Paeonia obovata Maxim.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

[논객칼럼=김인철] 산에 들에 피는 ‘우리 꽃’을 만나러 다닌 지 십수 년. 작년에 보고 재작년에도 본 그 꽃이 무에 그리 좋다고 또다시 찾아 나서느냐는 타박을 듣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잊은 채 무덤덤하게 그저 기계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닌가 하고 자성하기도 합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던 그런 일상 속에서 ‘헉!’ 하고 정신이 번쩍 나는 야생화를 만났습니다. 생김새가 오묘한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희귀종도 아니건만, 뷰파인더를 통해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숨이 멎을 듯 신비롭고 환상적인 색감을 보았습니다. 산작약의 꽃잎에서 세상 어떤 명인도 대적하지 못할 듯한 적색의 색칠 솜씨를 보았습니다. 자연의 신이 선녀의 비단 치마에 붉은색 물감을 곱게 들인 듯한 환상적인 색채를 보았습니다.

적색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산작약. 줄기 끝에 원형의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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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받는 산작약. 영월 등 강원도 몇몇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에서 말했듯 눈의 휘둥그레질 만큼 꽃이 예쁜 데다 귀한 약재 대접을 받고 있어 마구잡이 채취와 자생지 파괴 위기를 맞고 있는 귀한 식물입니다. 남한에서는 보기가 어려워 백두산 및 주변 지역 야생화 탐사 시 주요 관찰 대상의 하나였는데, 최근 그곳에서도 약초꾼 등의 남채로 갈수록 개체 수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높은 산 깊은 숲속에서 순백의 꽃을 한 송이씩 피우는 백작약. 학명은 Paeonia japonica (Makino) Miyabe & Takeda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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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의 나무 밑 그늘진 곳에서 높이 40~50cm로 자라며,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 사이 원줄기 끝에 지름 4~5cm인 원형의 꽃이 딱 한 송이 달립니다. 5~7장의 붉은 색 꽃잎은 오전 11시 전후로 살짝 벌어집니다. 외설적이며 헤퍼 보일 수 있음을 의식한 탓인지, 중앙의 홍색 암술머리와 황금색 수술을 들여다볼 수 정도만 벌어집니다.

북방계 식물로 강원 이북에서 주로 자라는 산작약과 달리, 백작약은 전국의 높은 산에 폭넓게 자생합니다. 꽃 색이 희고 꽃자루가 짧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산작약과 대체로 비슷한데, 역시 단아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과 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뿌리의 효능 때문에 약초꾼 등의 무분별한 채취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꽃은 산작약보다 한 달 정도 빠른 4~5월에 핍니다.

50여 년 만에 다시 그 존재를 알린 참작약. 학명 Paeonia lactiflora var. trichocarpa (Bunge) Stern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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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에서 자생하는 ‘작약’은 산작약과 백작약 외에 참작약이 있어 모두 3종입니다. 참작약이 지금은 삼척과 울진, 포항은 물론 강화 등지에서도 발견되고 있지만, 2006년까지만 해도 아예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1909년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에 의해 함북 무산령에서 처음 채집된 뒤 중부 이북에서 드물게 발견되다가, 1954년 광릉에서 1개체가 채집된 이후 생육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다 2006년 경북 포항에서 한 주민의 제보로 1000여 개체가 자생하는 1㏊의 생육지가 확인돼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산작약만큼 희귀하고 백작약만큼 단아한 백색의 꽃을 자랑하는 참작약 역시 그 뿌리가 귀한 약재로 쓰입니다.

화단 등지에서 흔히 만나는 원예종 작약.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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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산작약보다 다소 늦은 5~6월에 피는데, 원줄기 끝에 한 송이씩 피는 산작약이나 백작약과 달리 한 송이에서부터 많게는 5~6송이까지 여러 송이가 풍성하게 달립니다. 꽃잎도 10장 내외로 많은 데다 크기도 크고 탐스럽습니다. 특히 씨방과 열매에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약재로 쓰이는 뿌리가 적색이어서 적작약(赤芍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산작약과 백작약은 뿌리가 흰색이어서 약재로는 둘 다 백작약(白芍藥)으로 불립니다.

화단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약은 관상용 원예종으로, 희거나 붉거나 연분홍의 꽃이 대개 겹꽃으로 핍니다. 비슷한 형태의 꽃이 달리는 식물로 나무인 모란이 따로 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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