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제럴드 포드 대통령 이후 미국 대통령의 동북아시아 방문은 거의 예외 없이 한중일 3국의 묶음(패키지)여행이다. 이 묶음에 중국이 포함된 것은 1979년 미중수교 이후이다. 포드 이전까지 아시아 국가를 처음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 한창이던 1952년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1960년 그의 두 번째 방한은 국빈방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일 패키지 개념이 없어 아이젠하워는 두 번 다 일본을 건너뛰고 한국만 다녀갔다.

존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사태, 월남전과 같은 발등의 미소냉전을 치르느라 아시아 순방일정을 잡을 새도 없었던 가운데 암살을 당했다. 그 다음으로 한국에 온 대통령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었다. 월남전에 한국군 파병을 요청하기 위한 방한이었다. 그 때도 존슨 대통령은 한국만 다녀갔다. 존슨의 후임인 닉슨 대통령은 미중 수교에 전력을 기울여 중국만 방문했을 뿐 한일방문은 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다. 미국 대통령이 한일 두 나라 중에 한 나라만 방문하는 것은 한미일 3국 사이에 외교적으로 미묘한 갈등의 소지가 된다. 동맹에 차별을 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에겐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된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만 방문하고 한국을 들르지 않는다면 한국인에겐 매우 서운한 일이고, 정부의 외교 무능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일본국민과 일본정부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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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4년 11월 실제로 이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의 아베총리가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문차 아시아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단독으로 초청, 성사시켰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만 방문하고 한국에 오지 않는다면 한미일 공조에 균열 인상을 주고, 북한에 대해 나쁜 메시지를 준다는 명분으로 오바마의 방한을 강력히 요청, 관철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이미 한국을 3차례나 방문, 일본 방문 두 차례보다 많았던 터여서, 한국을 건너뛰는 아시아 순방일정을 짰던 것이나, 한국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네 차례 방한은 한국이 핵안보정상회의와 G20 회의 등 국제회의 개최국이었기 때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미국대통령이 동북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드문 기록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달 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 동안 일본을 요란하게 방문했다. 나루히토(德仁) 새 일본 천황의 즉위 축하라는 특수목적을 위한 방일이었으나, 그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천황과 만찬을 가졌고, 아베 총리와는 골프도 치고, 스모 구경도 하고, 선술집에서 술도 마시는 등 최상의 우의를 과시했다.

앞서 5월 4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5월7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했다. 청와대는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5월 말의 천황 즉위 축하와 6월말의 오사카 G20 회의 참석을 위해 잇달아 일본을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문제도 협의됐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방한 일정은 그 뒤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회의 참석 후로 조정됐다. 그가 5월 말에 왔으면 6월 말에 다시 한국을 찾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특별한 목적 없이 한 나라를 한 달 사이에 두 번 방문하는 일정이 무리라는 점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일의 진행과정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던 트럼프의 방한이 국내에서 소란해진 것은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정상 대화 이틀 뒤인 5월9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말 방한을 구걸한 ‘굴욕외교’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청와대는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강 의원의 폭로가 기밀의 누출이라고 보고 외교부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벌여, 강 의원의 고교 후배인 주미대사관 김 모 참사관의 소행임을 밝혀냈다. 북핵문제와도 관련된 이 사안은 정쟁의 대상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자유한국당 측은 ‘공익 제보’ ‘국민의 알권리’ ‘당국의 사실은폐’ 등 상투적인 언사로 강 의원을 엄호했다. 정부여당 측은 “대통령 간의 대화내용이 폭로되는 나라를 누가 신뢰하겠냐”며, 국격에 손상을 끼친 범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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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참사관이 유출한 통화내역은 주미 대사관에서도 3급 기밀로 분류돼 12명의 직원들이 회람한 내용이라고 한다. 대통령 간의 대화의 유출이라는 것을 빼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에 오는 길에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대화 내용은 공익제보나 국민의 알 권리를 말하기에는 너무 상식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외교관들의 휴대폰을 뒤지는 감찰 소동을 벌이고, 강 의원을 국가기밀 누출 혐의로 고발하는 정부여당의 대응 또한 과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는 것은 강 의원의 ‘구걸 외교’ 부분인데, 이웃집에 오는 친구에게 우리 집에도 들러달라는 것이 구걸이라면 와달라고 하지 않아야 당당하다는 얘기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행여 자유한국당의 대통령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김 참사관에 의하면 강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오거나,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에 찬성했을 리가 없는데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유도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가 정파적인 이유로 트럼프의 방한이 이뤄지지 않기를 바랐다면 그런 사고방식이야 말로 사대적이다.

김 참사관은 “야당의원의 국정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대화내용을 전해 주었다”며 “그가 그것을 구걸 외교로 포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외교부는 그에게 파면이라는 공직자에겐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 같은 중징계가 적정한 것인지는 추후 논란이 되겠지만, 공무원들의 입에다 재갈을 물리는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한 정치인의 분별없는 공명심이 초래한 가장 큰 ‘부(負)의 효과’라고 하겠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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