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우리 회사에 두꺼비를 닮은 임원이 새로 왔다. 작년 말 임명된 외부 출신 변호사인데 동글동글한 외모에 항상 웃는 얼굴이 호감형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분에 대한 안 좋은 평이 점점 늘었다. 고집이 세고, 매번 강제로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하는데다가, 월급은 제일 많이 받으면서 아랫사람한테 커피를 얻어먹는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밑에서 일하는 동기의 불평불만을 들으며 ‘첫인상이랑 많이 다른가보네.’ 싶었는데, 우리 팀 소관 임원이 갑작스레 퇴직하며 나도 이 분 밑에서 잠시 일하게 됐다. 

세간의 평가는 뜬소문이 아니었다. 보고서를 올리면 모든 사람들이 ‘기역’이라고 해도 ‘니은’으로 고치라 했고, 시도 때도 없는 업무지시에 계획에 없던 야근이 늘었다. 업무 가이드라인은 어쩜 그리 자주 바꾸는지 반복적인 업무에 직원들이 지겨워할까봐 일부러 배려하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루 업무를 얼추 끝냈다 싶으면 새로운 쪽지가 도착했다. “띠링띠링. 기존에 올리신 보고서 모두 첨부와 같은 방향으로 수정해주세요” 다행인 건 직속팀이 아니어서 점심시간의 자유가 유지됐다는 점이다. 

상사가 괴롭힐 때 하급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응은 뒷담화다. 나는 두꺼비임원이 나의 평화로운 업무일정을 망가뜨릴 때마다 그 만행을 동기들에게 공유했고, 그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잽싸게 잡아내서 미주알 고주알 퍼뜨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나 가족의 원수라도 욕하는 줄 알았을 거다. 물론 뒷담화의 대상은 두꺼비임원이었다가, 권노(권력의 노예) 팀장이었다가, 일 떠넘기기로 유명한 3차장(세 명의 차장)이었다가 매일 달라졌다. 그들을 욕하다보면 목울대까지 차올랐던 짜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그게 중요했다.

Ⓒ픽사베이

어느 날 두꺼비임원의 직속팀에 있는 과장님이 우리 지사로 출장을 왔다. 누구보다 고충이 많을 거라 짐작하고 그 임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맞장구칠 에피소드는 충분히 비축돼 있었다. 그러나 과장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 분도 안됐어. 적응할 시간은 줘야지.” 

난 신나게 풀어놓으려던 욕 보따리를 다시 주섬주섬 욱여넣었다. 과장님 의견은 이랬다. 평생 이 회사의 시스템과 문화에 익숙한 기존 직원들과 새로 부임한 임원 사이에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그 갈등의 속살은 보려 하지 않고 갈등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만 욕하는 것 같다고. 그건 텃세일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두꺼비임원은 최악의 리더는 아니었다. 업무적으로 고집이 센 건 맞지만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직접 마련하고 가이드를 제시해주니 최소한 일을 할 때 헤맬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직원들의 점심시간을 빼앗은 당사자는 사실 두꺼비임원이 아니라 그 바로 아래의 권노 팀장이었다. 새로 온 임원을 의전 한답시고 자기 팀원들의 점심시간을 희생시켜 강제로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물론 아랫사람들의 고충을 짐작해서 팀장의 과잉의전을 제지하거나, 조직의 웃어른으로서 커피 한잔 쏘는 배려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 정도 흠은 흠도 아니었다. 두꺼비임원은 최소한 다른 임원들처럼 저녁회식에 불참하는 사람을 조직 부적응자 취급하거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라니씨는 이쁘니까 내부 직원들 만족을 위해 더 힘써줘!”)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뜬구름 잡는 소리(“표현을 좀 더 직관적이면서 상징적으로 바꾸란 말이야. 가져가!”)를 하는 일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보기 드문 관리자였다. 

난 욕할 대상이 필요했고, 두꺼비임원이 때마침 표적에 있었을 뿐이었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나와 동기들은 암묵적으로 만만한 적을 한 명 만들었다. 그가 실제로 착한놈이든 나쁜놈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뒷담화는 너무나 가벼운 유희였다. 실수로 당사자에게 메신저를 잘못 보내지 않는 이상 우리만의 작은 공간에서 반짝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시한부였다. 물론 그 이야기가 돌고 돌아 어떻게든 당사자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단지 그 사람과의 관계만 악화되고 끝이었다. 내가 욕하는 저 사람이 실제로 부당한 행위를 했는지, 그렇다면 그건 얼마나 부당한 행위였는지 그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

전화를 받자마자 진상 민원인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고, 스트레스성 장염이 도져 속이 꿀렁거리는 와중에 산더미 같은 일을 던져주는 상사에 대한 뒷담화 없이 직장생활을 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욕은 필터링이 필요 없지만, 그 비판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내 손가락을 잠시 멈추는 자제력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가벼운 뒷담화의 짜릿함에 익숙해져 생각하기를 포기하게 되면, 내가 두꺼비임원에게 한 것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상대방을 쉽게 나쁜놈으로 규정하고, 그 결론을 강화시키는 근거들만 선택적으로 모아 그를 최악의 악당으로 만들어 버린다. 멀쩡한 사람을.

한낱 평직원이 임원 걱정하는 게 아니다. 임원이 됐든 후배가 됐든 올바른 기준 없이 단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욕하게 된다면, 나는 내가 지금까지 혐오했던 꼰대들과 다를 바 없게 돼버린다.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하려면, 웃는 얼굴에 거리낌 없이 침을 뱉으려면,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어떤 기준이 정말 합당한 것인지를 늘 불안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성실함이 먼저다. 욕은 그 다음이고, 그래야 뒷담화에서 끝내지 않고 앞에서도 욕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나는 내일도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지만, 그 대상은 아마도 두꺼비임원은 아닐 거다. 그는 지금까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만한 행동은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웃는 얼굴로 인사를 드려야겠다. 뒤에서 욕해서 미안합니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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