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얼마 전 과외를 시작했다. 여섯 살 아이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가르친다기보다는 같이 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책상에 앉아 교재를 보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함께 그림 그리고, 퍼즐 맞추고, 장난감을 손에 쥐면서 대화를 하니까. 솔직히 책상에 얌전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아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 안을 뛰어다니기 바쁘다. 책을 읽어주려고 앉히면 금세 일어나 침대 위로 올라가있다. 뒤따라 잡으러 가면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것은 과외인가, 체력단련인가? 

책꽂이 위에 아이의 어린(?)시절 사진이 여러 장 놓여있다. 돌도 안 된 시기라 그런지 정말 작고 귀엽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뛰어다니니 시간이 흐르긴 흘렀고 아이도 그 사이 성장했나 보다. 여전히 작고 귀여운 건 마찬가지지만. 

아이는 나를 참 좋아한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반긴다. 함께 떠들고 노는 시간 내내 아이는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해맑은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 방 벽지에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호랑이, 사자, 토끼, 여우, 코알라 등 다양하다. 아이가 한 동물에 손을 짚으면 내가 그 동물 울음소리를 낸다. 아이가 토끼에 손을 대자 나는 “야옹”이라고 외쳤다. 그거 아니란다. “깡총”이란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과외 끝나고 아이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을 먹을 때 아이는 내 옆에 달라붙어 앉는다. 내가 그렇게 좋을까. 나를 좋아해줘서 고맙다. 

Ⓒ픽사베이

늘 이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도 아이가 지금처럼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게 분명하다. 아이가 몇 년 뒤 초등학교 입학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나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겠지. 몇 년 뒤에는 과외를 그만두었을 수도 있겠지. 아이는 친구, 연예인, 그 밖의 여러 관심사에 열중하느라 어린 시절 함께했던 과외 선생님을 까맣게 잊고 살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가 우연히 다시 만나면 아이는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처럼 반갑게 웃으며 달려와 안길까, 어색한 듯 정중하게 인사를 할까? 아이가 나를 보고 예의를 갖춰 목례를 하면 왠지 서운할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이렇지 않나 싶다. 내가 어렸을 당시, 아버지는 종종 나를 목마 태워주시고는 했다. 아버지의 키가 나보다 한없이 커보였던 시절, 나는 밖을 돌아다닐 때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아버지께 언제든지 물어보았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점점 아버지와 마주하기가 불편해졌다. 성적, 진학, 진로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서부터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자연스레 아버지께 먼저 다가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목마 타고 손을 잡고 다니던 밀착 동행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적당히 간격을 두고 지낸다. 그렇게 멀어진 간극은 쉽게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아버지와 거리를 두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갑지 않고 이러는 내가 싫다.

훗날 내가 자식을 낳으면 나와 자식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나와 아버지의 관계와 같을까? 현재 과외하는 아이도 몇 년 뒤에는 지금만큼 나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태도는 달라지게 마련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 서운한 감정을 숨기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다. 과외하는 아이나 미래의 자식이 나와 살갑게 지내다가 점점 크면서 나를 어려워하면 서운해 할 거면서. 마찬가지로 지금 나의 아버지가 나의 태도에 서운해 하실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 점을 알면서도 잘못을 여전히 범하고 있다. 

나도 당하면 서운해 할 일을 누군가에게 저지르지는 않았던가? 여섯 살 아이를 과외하면서 그동안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늠해보았다. 그래,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누군가를 서운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까?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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