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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사람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한성규의 하좀하]
한성규 | 승인 2019.06.20 11:14

[청년칼럼=한성규] 대한민국 대기업 10곳 중 7곳이 이제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워라벨 제도를 확대했단다. 이와 함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근무시간 관리제도까지 도입했단다.

내가 근무하던 뉴질랜드 정부는 워라벨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고, 근무시간 관리 제도나 유연근무제도도 내가 입부하기 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퇴직이 얼마 안남은 60, 70대 선배들에 따르면 자기들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걸러 하루 일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단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워라벨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픽사베이

아, 회의를 안 해도 된다니 행복하다 

직장을 때려치운 지금 가장 행복한 일은 두 번 다시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기업 10곳 중 52.1%도 불필요한 회의 자제를 포함해 회의문화를 개편했단다. 나는 결코 말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달변가라는 소리를 들어왔으며, 저번 주에는 24세 여성이 무려 37세에 달하는 나를 향해 너무 재미있다며 개그맨 하셔도 되겠어요, 라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만 되면 주위의 아이들이 내 책상 근처로 몰려들었으며, 대학에서도 발표라는 발표는 다 내가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가진 첫 직장이었던 군대에서 나는 회의만 하면 '꿀 먹은 벙어리'였다. 처음에는 내가 지식이 없어서 그런가했다. 맡은 직책이 정훈장교여서 이런저런 회의에 불려 다녔는데, 다른 보직과는 달리 정훈장교는 수가 부족해 군 생활 10년이 넘는 소령, 중령들이 있는 회의마다 군에 입대한지 1년도 안 되는 내가 참석해야 했다. 전투기고, 미사일 방어시스템이고 간에, 뭐 아는 게 있어야 말을 하지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병역의무는 끝까지 마치고 뉴질랜드라는 곳으로 건너가 국세청에 입부했을 때다. 회의를 하는데 나는 역시나 '꿀 먹은 벙어리'였다. 심지어 월요일 아침에 하는 업무 공유회의에서도 나는 비에이유만 외쳤다. 해석하자면, 평상시 업무나 수행하겠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국세청 업무 파악이 덜돼서, 혹은 내 영어가 부족해서 그런가 했다. 그런데 결코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징수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납세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트럼프를 능가하는 단판으로 엄청난 실적을 가져왔고, 어카운트 메니저로 옮기자마자 회계법인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바쁜 대표회계사들과 몇 시간씩이나 국가재정에 대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토론했다. 애널리스트로 옮겨서 다른 부서 사람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구나. 나는 내향적인 인간이구나. 

혼자가 편한 사람들 

도리스 메르틴의 혼자가 편한 사람들이란 책을 읽고는 확실해졌다. 그동안 외향적이라고 믿어왔던 내 자신에 대한 오해도 풀렸으며 내성적인 인간에 대한 오해도 풀렸다. 내성적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란다. 흔히 사람들은 내성적이라는 말을 소심하다, 겁이 많다, 비사교적이다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10년이 넘게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코칭활동을 한 도리스 메르틴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오해라고 한다. 내성적인 사람들도 통 큰 사람들이 많으며 위험을 감수하고, 무엇보다 사교적인 사람과 리더쉽이 있는 사람이 많단다. 즉,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독일 최초의 여자총리 앙겔라 메르켈, 말빨이라면 세계 누구와 겨루어도 지지 않을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내성적인 인간형이란다.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만 하면 불량품도 럭셔리 제품으로 바꾸어버린다는 발표계의 신 스티브 잡스도 내성적인 인간이란다.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성향의 차이라고 한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힘이 드는 것이라고 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지치지 않고 여러 사람과 말을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은 여러 사람과 말을 하면 쉽게 지친다고 한다. 결코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흔히 하는 오해와는 달리 외향인에게도 내성적인 면이 있고 내향인에게도 외향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양극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반대로 알고 있었던 사실도 지적해주었다. 외향적인 인간은 말을 할 때 남을 쳐다보고 들을 때는 쳐다보지 않는단다. 반대로 내향적인 인간은 말을 할 때는 시선을 피하며 남의 말을 들을 때는 집중하기 위해 남을 뚫어져라 쳐다본단다. 내 경우가 딱 그랬다. 책에서는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에게 말을 할 때는 시선을 올리고, 들을 때는 시선을 내리라고 조언하고 있다. 새겨들을 말이다.

또, 내향인은 대화를 할 때 한 번에 여러 주제를 다루지 않고 정해진 몇몇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딱 내 얘기였다. 나는 쓸데없는 주제로 대화하는 스몰토크, 즉 잡담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가 상대방과 이야기할 주제가 정해져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필요 없는 대화는 나나 상대방의 독백으로 끝나 버렸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가 즐겁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연습을 해서 말을 하란다. 명심해야겠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말은 없지만 사람은 진국인 다아시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무런 압박감 없이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 있지. 내겐 그런 재주가 없다네.” 라고.

모든 내성적인 인간들을 대표해 다아시가 용기를 내서 고백해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의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도 재치 있게 잡담을 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고 한다. 스몰토크는 쓸데없는 수다가 아니라 합목적적인 대화의 일부분이라고 도리스 박사의 책은 설명하고 있다. 즉,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관계의 물꼬를 트게 해준다는 것이다. 스몰토크의 목적을 무시하고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고 그 누구와도 끈끈하고 탄탄한 유대관계를 맺을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단다. 즉 알맹이 있는 대화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파악하는 과정이 스몰토크라는 것이다. 

연습 또 연습, 노력 또 노오력 

나는 아직도 스몰토크가 힘들고 사람들이 여럿이 있는 곳에서 대화를 하면 힘이 빠진다. 그래도 직장을 쉬고 있는 지금 열심히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부러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억지로라도 대화에 참여하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하고 나면 에너지가 방전되어 몇 시간씩 혼자 쉬어야 하지만. 

직장에 다닐 때 여럿이 의미 없이 떠드는 회의에서 힘없이 가만히 있다가 혼자 말할 기회가 완전히 주어졌을 때 문제의 핵심을 짚고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 회의란 게 일단 답을 못 찾는 문제에 답을 찾는 것이니까 나는 답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이런 태도에 왜 처음부터 참가하지 않느냐, 왜 마지막에 딴지를 거느냐, 일에 관심이 없는 거 아니냐 등등의 오해를 했다. 

외향인들이 내향인들에 대해 모르는 만큼 내향인들도 외향인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나는 지금부터 외향인들에 맞서서 싸우기 보다는 나를 둘러싼 외향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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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규  katana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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