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의 청년실격]

[청년칼럼=이주호] 여태껏 나는 이렇다 할 선배를 만난 적이 없다.

20대 초반에 방황을 했다. 학교는 불만족스러웠고 내 주변은 엉터리 같았다. 누군가 대화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너무 진지하진 않지만 또 실없진 않는 대화 말이다.

지난 주말 EPL 하이라이트 얘기는 고등학교 때 질리도록 했다. 이젠 그보다 조금 큰 대화를 하고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비슷한, 혹은 뉴스에 나오는 얘기들, 많이 양보해서 읽고 있는 책 정도. 하지만 주변엔 시시한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적극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 삶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깐. 하지만 적당한 사람이 있다면 말 한번 붙여볼 용기는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런 사람은 “선배”이길 바랐다. 그런 포지션은 동기도 교수도 아닌 선배가 담당해야만 캠퍼스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아마 그런 사람 한두 명 만났다면 내 삶은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픽사베이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휴학도 하고 결국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해 마지막엔 편입을 했다. 이제 새내기와는 거리가 먼 학번이 됐다. 동아리에서나 동기들 사이에서도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사회 경험 하나 없는 풋내기지만 캠퍼스 안에선 제법 어른이었다. 친구가 필요했고, 축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주장은 나랑 동갑이었다. 나는 그 동아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동아리는 대부분 복학생들이었다. 받아주고 찾아주는 사람 없는 복학생들끼리 끈끈히 뭉쳤다. 세 시간 정도 축구를 하고, 두 시간 정도 치맥을 먹었다.

그렇게 치맥을 먹던 저번 주, 복학생 한 명이 “형은 평소에 무슨 생각 하고 지내요?”라며 물어왔다. 나는 빨리 취업할 생각 밖에 안 한다고 대답했다.

그건 거짓말이다. 취업에 관해서 난 “될대로 되라”라는 편이니깐. 그냥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벼운 자리에서 진지한 대화를 질질 끄는 건 꼰대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쩌면 질문한 동생은 몇 년 전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동생은 나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용기를 내 물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랑 비슷한 갈증을 느끼는 친구였을까. 조금 더 그럴싸한 대답을 할 걸 생각하다가도, 내가 그런 대답을 가진 게 있나 싶다. 아마 그 친구는 훗날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여태껏 나는 이렇다 할 선배 한번 만나본 적 없다고.         

이주호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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