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영월기행]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주말을 맞아 지인 몇몇과 강원 영월의 청령포(淸泠浦)와 법흥사(法興寺)를 찾았습니다.

조선 6대왕 단종(端宗:1441∼57)의 유배지인 청령포나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법흥사(적멸보궁)는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깊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습니다. 동이도 이번 청령포 방문이 세번째였으니까요.

청령포의 울울창창한 송림은 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케 합니다.

단종 유배지 어소를 넘어간 노송@동이

노송 한 그루는 단종의 애끓는 사연을 알기라도 하듯 유배지 어소의 담을 훌쩍 넘었습니다. 쓰러질 듯하면서도 푸르름을 간직한 기개가 돋보입니다. 유배 어소인 탓인지 처연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청령포 섬 중앙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관음송은 높이 30여m, 둘레 5m를 자랑합니다. 1.2m 높이에서 2가지로 갈라져 동서로 하늘을 향했습니다. 단종 유배 때 수령 80년이었다고 하니 이제 600년이 넘었지 싶습니다. 단종은 이곳서 유배생활하며 관음송의 갈라진 사이에 걸터앉곤 했다고 합니다. 유배된 왕(단종)의 모습을 보고(觀) 소나무가 우는 소리(音)가 들렸다해서 관음송이라 이름지었졌다죠.

청령포 섬 중앙에 있는 관음송. 관람객들의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동이

그런데 관음송을 보고 있자니 일전에 방문했을 때 눈에 거슬렸던 것이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관음송은 덩치가 크고 다소 비스듬하게 자라 관리당국이 철제기둥을 받치고 와이어로 잡아맸습니다. 철제 받침기둥은 관음송 속살마저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철제기둥과 와이어로 나무를 보호한다는 게 오히려 관음송의 생명을 단축시키지 않을까 염려됐습니다.

기암괴석과 노송을 병풍삼아 들어선 법흥사@동이

신라시대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법흥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고찰답게 들어선 위치만으로도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우거진 금강송 군락과 기암괴석 사이에 자생하는 노송들. 그 속에 고즈넉히 들어선 천년고찰은 경탄할만한 경관입니다.

청량한 바람 결에 진신사리를 모신 곳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라도 한다면 수명이 한 1년쯤 길어지지 않을까...이곳 아람드리 금강송 군락은 태고의 원시림 자체였습니다.

태평양 전쟁때 송진채취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금강송@동이

경내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 뭔가가 눈에 밟혀 다가가 보니 금강송 밑둥에 ‘이상한 흔적’이 여럿 있습니다. 지나쳤을 수도 있는, 그 흔적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연료용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 밑을 V자 형태로 도려낸 상흔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더 지속됐더라면 이 우람한 금강송들도 남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백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 청산되지 않은 일제잔재를 보는 듯했습니다.

‘기품 속의 아픔’이랄까, 관음송 철제기둥이나 금강송의 송진채취흔을 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법흥사 초입에서 한껏 꽃을 피운 큰 밤나무가 다소 위안이 돼주었습니다.

수령 200년 법흥사 큰 밤나무. 가지마다 꽃을 피워 내 노익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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