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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당신은, 같나요?[서석화의 참말 전송]
서석화 | 승인 2019.06.26 08:31

[논객칼럼=서석화] 모두에게 물었는데 내가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때가 있다. 보편적인 대답을 기대하는데, 나 개인의 특별한 답을 내놔야 할 때가 있다. 삼 년 만에 지인 K의 전화를 받은 후, 지금 내가 그렇다.

처음 며칠은 그녀가 근황이라며 알려준 ‘하는 일’ 때문에 솔직히 마음이 아팠다.

©픽사베이

“나 요새 뭐하는지 모르죠?”

삼 년 만에 불쑥 전화를 걸어놓고 K는 대뜸 묻기부터 했다. 비슷한 시기에 문단에 나온 데다 연배도 비슷해 알고는 지냈지만, 특별한 정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솔직히 나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할 그 무엇도 없을 만큼 그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옳다.

“나 요즘 일하고 있어요. 놀랐지? 직장 생활이라곤 하루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다 늦어 일을 한다니까. 삼 년 됐네. 돈도 벌면서 좋은 일도 하는 일이야.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최면처럼 내세우는 구호겠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 당황스러움은 알게 모르게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나이 육십 둘, 대졸 학력을 가졌고 신춘문예 당선이란 화려한 등단 절차를 거쳐 두 권의 소설까지 펴낸 작가! 몇 번 마주쳤던 기억을 재빨리 훑어봐도 사는 형편이 힘들어 보이진 않던 사람!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생각이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런 나를 훤히 보고 있는 듯 K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놀랐구나? 당연해. 나도 내가 타인 같은데... 고학력이 업종에 따라선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일 하며 알았으니까. 처음에 멋모르고 이력서 내라길래 사실대로 적었다가 면접 때 오히려 망신만 당했지 뭐야. 왜 옛날에 대학생들이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자들 의식운동 했잖아? 그런 사람 보듯이 하더라니까? 그래서 다음엔 확 깎아 중졸로 적었더니 써주더라고. 근데 진짜 자기 많이 놀란 것 같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물론 나는 사실 K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지금 하고 있다는 일도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왜 K가 일을 한다는 건지... 내 말은 K는 작가잖아요? 작가가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게 할 일이고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상처 주지 않고 격려와 응원은 아니라도 인정은 해야 된다는 강박에 자꾸 끝말이 제대로 맺어지지 않았다.

©픽사베이

“하는 일? 해야 할 일? 작가는 따로 있는 거야? 난 이제야 내가 진짜 작가 같은데? 그래서 자기한테 오늘 내 소식도 알린 거고. 자기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사람 이해하는데 명수잖아? 아닌가? 지금 보니 엄청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네.”

뜬금없이 전화한 사람으로부터 억울한 꾸중을 듣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도 않아 이해의 폭을 넓혀주지도 않았으면서, 그동안의 저장된 기억으로 대응하고 있는 내게 편견이 심하다니! 운수 나쁜 날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가 궁금해했다고 몇 년 만에 자기 멋대로 전화를 해서, 묻지도 않은 근황을 말하더니, 그 반응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가 말이다.

나는 통화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말을 준비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켜켜이 쌓인 짙은 구름을 뱉어내는 것 같은 K의 한숨이 계속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무리 말은 떠오르지 않은 채 이어지는 K의 한숨에 나도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때 잔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마음을 가다듬은 듯한 K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나도 나를 몰라서 그래. 어쩌다 보니 지금 ‘하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야. 이상한 나라에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은 여전하고. 그래서일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가 하는 회의와 질문이 자꾸 드네. 물론 나는 지금 하는 일도 작가로서 내 작품을 위해 필요한 취재라 생각하지만, 의지가 현실을 이기게 하려니까 온몸에 날이면 날마다 가시가 돋는 것 같아.”

무언가 읽힌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아픔이나 괴로움일 때는 더 그렇다. 나는 한숨이 터져 나오는 가슴을 한 손으로 잡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말했다.

“작가에게는 어떤 경험도 유의미하지 않은 건 없죠. 그런 이유라면 지금 K는 ‘하는 일’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의 토대가 될 거예요. 진짜 작가시네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앉아서 천 리 밖도 안다고 내세우는데, K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직접 발로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말을 하는 순간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상쾌해진 나는 친한 소수의 사람 아니면 늘 단답식이었던 습관을 깨트리고 말을 이었다.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토씨 하나까지 살아서 체온이 느껴지는 그런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때였다. K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픽사베이

“아니 아니야. 솔직하게 말할까? 이 일이 공짜라면 내가 할까? 작가로서 취재? 그거 내가 씌운 허울이 아닐까? 어쩌다 보니 하고 있는 이 일이, 해야 할 일이 되려면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사람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어떨까? 같을까? 아니면 서로 반대로 치닫고 있을까? 하는 일은 사실 그때, 그 시간,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잖아?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할 일은?”

모든 진실한 고백은 힘드는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 도입 부분이 길 수밖에 없다. 나는 자세를 편히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내 그런 마음이 읽혔을까? 담담해진 안정된 톤의 K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요즘 감나무 밑의 사람 생각을 많이 해. 목만 길게 빼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 말이야. 그래서 나는 감나무 둥지라도 흔들려고. 흔들어서라도 떨어지는 감을 주우려고. 그러면 감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내 지금이, 감을 줍는 수확자로 나를 들어 올려 주지 않을까?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지 않을까? 해야 할 일? 그건 하고 있는 일이 의미를 낳고 사람을 자라게 한다면 저절로 도달되는 어떤 지점일 거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진짜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내 생각을 위선이고 포장이며 억지라고 비웃을까?”

어쩌면 K, 당신은 당신의 의지를 누군가에게라도 알려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었구나... 사정은 모르지만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갈등과, 그것을 이기고자 하는 용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구나... 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지금 이 타임이야말로 무슨 말이든지 해야만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자 삼 년 만에 별로 살가운 정도 나눈 적 없는 내게 전화를 해 준 K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픽사베이

“K! 글 써요. 신춘문예로 번쩍번쩍 등단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책 나오면 전화 줘요. 첫 번째로 사서 읽는 독자가 될 테니까. 지금 그 글을 쓰려고 그 일을 하는 거예요. 열심히 감나무 흔들어요. 두 손으로 주워 담지도 못할 만큼 많은 감이 떨어질 거예요. 진짜 작가다. 정말!”

통화를 끝낸 그날 나는 오랜만에 정말 많이 걸었다. 운동부족을 실감하게 하는 발목이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시큰거릴 정도로.

하는 일!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

©픽사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상황이 불만족스러운가. 창피하고 억울해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가. 억지로라도 우겨서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무게를 잘라내고 싶은가. 그래서 나날이 비탈에 서 있는 정신과 마주치는가.

그렇다면 ‘하는 일’을 ‘해야 할 일’로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를 수 있다는 거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로 의미가 확장된다면, 그 이상의 보람과 긍지가 또 있겠는가.

나는 K가 하고 있다는 일을 모른다. 하지만 K는 그렇게 할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직접 겪고 부대낀 싱싱한 글을 나는 밤을 새워가며 읽게 될 것이다.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그녀가 하고 싶은 일로, 그리고 해야 될 일로 보상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꿈과 이상은 미래에 있는 거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현재다! 현재가 미래보다 더 ‘진짜 시간’인 것도 그래서이다. 

서석화

시인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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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화  shire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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