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TV를 지켜보는 내내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극적이었고 신선했고 상쾌했다. 이념적으로 갇혀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탓일까, 남북미 3인 정상이 악수를 나눌 때는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시대가 확실히 바뀌었음을 보고 있고, 변화의 도도한 흐름을 본다.

6월 마지막 날, 문재인 대통령, 미국 트럼프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회동은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3인 정상들의 판문점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와 정치인들, 언론들이 맞추지 못했다. 그만큼 이루어지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맞추고 못맞추고를 떠나서 그것은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 때문에 나온 어쩔 수 없는 예측이었다고 생각한다.

대결적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람들은 만남 자체를 부정했을 것이고, 그런 이데올로기에 알게 모르게 세뇌된 사람들 역시 결코 일어나지 못할 일이라고 내다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타성에 젖어서 상상력을 내팽개친 채 살아왔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사적 배팅과 역시 승부사적 화답을 한 김정은 위원장, 여기에 착실히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이 상상력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이제 우리는 타성에 젖어 좀 어려운 일은 “안될 것이야”라고 미리 체념해온 패배주의를 극복할 때가 되었다. 3인 정상회동이 그것을 웅변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라는데 동의한다.

Ⓒ청와대

벌써부터 남북 화해에 까탈스러운 세력은 얻은 것없이 깜짝쇼를 벌였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대선 전략에 놀아났다고도 폄하했다. 어떻게든 흠을 잡고, 꼬투리를 잡아 비틀고 싶은 사람들은 극적 회동을 사소한 모임인 ‘번개팅’으로까지 격하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도 정치 행위를 한다. 대선을 이용하려는 것이든, 다른 사업적 목적이 있든 정치 행위가 없다면 정치인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그 정치 행위가 어떤 선의가 있느냐는 데 평가의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이다. 악의가 담겨있다면 준엄히 꾸짖어야 하고, 그런 감식안을 갖는 것이 언론이다.

일부 논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것 역시 당연한 분석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체제보장과 생존의 마지막 수단으로 핵보유를 들고 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하나마나한 분석이다. 그것을 어떻게 폐기토록 유도하느냐가 우리의 과제다. 문제는 전쟁으로 쓸어버리지 않는 한 대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한미 대 북한은 70년 대결을 일상화한 나라들이다. 지금도 전쟁을 멈추고 있는 중이다. 70 수년의 적대관계와 30년의 지루한 북핵 줄다리기, 그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 풀린 것이 없었다. 여기에 동원된 지도자만 해도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가 있고, 미국은 아버지 부시를 비롯해 카터,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가 있었다. 그리고 불과 2년 전엔 서로 쓸어버리겠다고 으르렁거렸던 사이다.

그런데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덮어놓고 당장 핵을 포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들 자신도 해결은커녕 더 악화시켜놓고 당장 핵을 내려놓도록 해결하지 않으면 김정은에 동조한 종북 빨갱이라는 식이다. 성급하게 서둘지 말라고 훈계하면서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앞뒤가 안맞는 논리를 편다. 동침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부터 내놓으라는 식이다. 그러니 비판에 진정성이 없다.

지금 협상은 전향적으로 진행중이다. 그 과정에서 진전과 답보를 보이고 있다. 그 많은 세월동안 상호 불신 때문에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고 본다. 이런 불신의 해소과정도 없이 덮어놓고 해결하라는 식은 몰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세계 질서가 달라지고 있다. 낡은 이데올로기 대신 냉철한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역내 공동발전과 공동번영을 꿈꾸고 있다. 긴장과 대결과 전쟁은 서로 자멸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변화하는 세상을 보아야 한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 트집 잡고, 갈 길을 훼방놓는 일은 경망한 짓이다.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국민 지성도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 북미 정상 3차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백악관 초청과, 이를 위해 2-3주 내 실무협상을 벌인 것 이외 얻은 것이 없다고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하노이 회담 결렬을 딛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또 두 정상간의 신뢰를 쌓은 것이 무엇보다 소득이었다고 평가한다.

하노이에서 결렬된 이유가 무엇이고, 협상 카드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이번 회담에서 명료히 했을 것이다. 포괄적 비핵화와 포괄적 안전보장의 교환, 그 실행단계로 영변 핵폐기 등 예측가능한 프로그램도 논의했을 것이다. 실무협상에서 촘촘히 이런 프로그램들을 짜나가면 된다.

비핵화ㆍ평화체제 전환은 엄연한 시대적 과제다. 이를 위해 세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세기적 만남을 가졌다. 역시 부단히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 꿈이 알찬 결실로 맺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평화가 쌀이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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