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의 달빛생각]

[청년칼럼=이루나] 친척 결혼식 참석을 위해 고향인 부산에 가게 되었다. 장거리를 운전해서 가는데 결혼식만 보고 오기가 아쉬웠다. 부모님과 함께 외도에 다녀오는 1박 2일 일정을 급하게 짰다. 외도는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이다. 왕복 뱃삯에, 입장료도 따로 있고, 게다가 관람 제한 시간마저 있다. 아주 콧대 높은 갑님이다. 음식물 반입도 되지 않는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귀한 분을 영접하러 가는 분위기다. 어떤 녀석인지 꼭 한번 보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부산에서 거제도로 가는 길은 거가대교로 매우 편리해졌다. 바다 밑을 지난다는 게 전혀 실감 나지 않고 지루하기까지 한 침매터널을 지나 손쉽게 거제도로 들어섰다. 외도에 갈 수 있는 항구는 무려 7개나 된다. 외도라는 콘텐츠가 수많은 항구를 먹여 살린다니 더욱 기대된다. 신식 유람선이 있다는 구조라항으로 향했다. 유람선은 외도에 앞서 해금강 투어를 떠난다. 딸아이는 기암괴석보다 유람선을 줄기차게 따라오는 갈매기 구경에 더 신났다. 갈매기들은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를 기막히게 부리로 낚아챈다. 투수와 포수가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호흡이 기막히다.

해금강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목적지인 외도로 향한다. 외도 인근에는 여러 항구에서 온 많은 유람선이 정박해있었다. 유명 맛집 앞에서 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리는 꼴이다. 외도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늦지 않게 오라는 선장님의 당부를 뒤로하고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외도의 관람 코스는 한 가지다. 안내도를 따라 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배를 탈 시간이 얼추 맞는다.

@이명렬

외도는 보타니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보타니아는 식물의 낙원(Botanic + Utopia)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다양하고 이국적인 식물들이 아름드리 자라고 있다. 외도를 관람하다 보면 곳곳에서 나무를 손질하는 정원사들과 마주치게 된다. 외도는 자연 그대로의 정글이 아니라, 사람 손에 정교하게 가꾸어진 조각품이다. 최근 산림 기능사 자격증을 딴 아버지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더니 연거푸 사진을 찍으며 신이 나셨다. 아버지에겐 외도가 정말 유토피아인 모양이다.

산책로의 초반은 경사 급한 오르막이다. 더운 날씨에 딸아이는 금세 지친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쥐여주니 그제야 해맑아진다.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넓은 정원에는 겨울 연가 촬영장이었다는 안내판도 있고 곳곳에 사진을 찍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있다. 시간이 빠듯하다 보니 유명 장소에서 서로 먼저 찍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잦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에 조급함이 배어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호사를 부릴 틈이 없다. 비싼 경비를 들여 힘들게 왔으니 인생 샷 하나는 건져야 한다는 일념이 앞선다. 외도를 눈으로 즐기기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 야속하게도 배 출항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이명렬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간다. 하산길에는 관광할 여유가 아예 없다. 배 시간을 놓치면 낭패다. 발길을 재촉해 선착장에 도착했다. 5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쁜 숨을 돌린다. 선착장의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서로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평가하느라 눈앞의 절경에는 관심이 없다. 얼마나 멋진 각도로 이국적인 배경이 잘 나왔느냐가 주요 관심사다.  외도는 실제 바다에 떠 있는 섬보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외도가 더 아름답다. 모두들 고르고 골라 인생샷으로 올린 외도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하지만 정작 실제 외도에서는 낭만과 아름다움을 즐길 시간은 없다. 외도는 눈앞에 있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섬이었다. 

자연환경의 보호를 위해 관람 시간을 제한한 것은 옳은 처사다. 하지만 빠듯한 관람 시간은 관람객을 지치게 하고, 외도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한 번은 꼭 가볼 만하지만, 두 번은 가기 힘든 곳이 외도다. 정신없는 관람을 끝내고 구조라 선착장에 내렸다. 딸 아이가 보챈다. 종일 차와 배를 타고 어른들 손에 끌려다니기만 했지, 아이가 마음껏 논 시간이 없다.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선착장 건너편의 구조라 해변에 들렀다. 아이는 물 만난 고기다. 신발, 양말을 후다닥 벗어 던지더니 모래 해변에 철푸덕 주저앉는다. 빈 페트병 하나와 조개껍데기 몇 개, 파도에 떠밀려온 미역 줄기로 소꿉장난을 하며 행복해한다.

외도는 오롯이 어른들의 놀이터자 비싼 장난감이다. 가는데 많은 공이 들고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매만지기 어렵고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반면 해변은 아무에게나 열려있다. 모래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로 이름을 써도 파도 한번 지나가면 말끔해진다. 난 외도보다 구조라 해변이 좋다. 조금 덜 정돈되고 무뚝뚝해도, 나지막한 파도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른의 눈높이를 쫓느라 아이와 함께 마음껏 놀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이번 주말엔 멀리 가지 않고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뛰어놀 생각이다. 내게 외도는 아직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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