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청년칼럼=김봉성] 비만은 생활에서 왔으므로 해결책도 생활에 있다. 생활이 아닌 방편들은 비만에 맞서기 허약(虛弱)하다. OO다이어트, XX요법, △△약 등은 요요를 동반하는 허약(虛藥)으로 귀결된다. 무엇을 하든 우리는 생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내가 비만이라면 내 생활이 비만한 것이고, 내 생활이 비만이어서 내 영혼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이다. 나는 의지박약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적당히 주다 말았다. 어느새 다이어트의 목적이 미용이 아닌 노화방지가 되었음에도 매일 아침 시작했다가 저녁에 파기되는 패턴에 익숙해졌다. 이제 다이어트는 콜레스테롤, 혈압, 고지혈증, 당뇨로 포위된 생존 문제이다. 그런데도 나의 의지박약은 우직하다.

Ⓒ픽사베이

다이어트는 내 의지를 불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치킨 앞에 터무니없이 무력한 존재다. 작년에 혼자 42마리를 먹었다. 일주일 마지막 날 홧김비용으로 지불하는 습관이었다. 치킨은 라면과 더불어 내 내장지방 대주주를 다퉜다. 한 주 마지막 날 퇴근길,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배달앱을 열었다.

의지는 순수 내부 문제만은 아니다. 외부에서도 끊임없는 할인 이벤트로 식욕을 자극했다. 배달앱에서 쿠폰을 폭격할 때 치킨 주 2회에 피자와 분식이 더해졌다. 지난 3월에 시작해 한 달간 ‘배부르게 뺀 2kg’을 무위로 돌린 것도 배달앱 때문이었다. 업계 1, 2위 업체가 쿠폰 치킨 게임을 해댔다. 1만8000원짜리를 8000원에 살 수 있을 때,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동네 할인마트들은 원미동의 형제 슈퍼와 싱싱청과물처럼 할인 행사를 해댔다. 주거래 마트 두 곳 외에도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서도 내 집까지 할인 전단을 붙여왔다. 인스턴트 제품들은 쿠폰을 동반한 인터넷 최저가보다 쌌다. 라면 다섯 봉지에 1980원, 냉동피자 3980원에서 식욕이 동했다. 행사 때 무더기로 살 수밖에 없었다. 다 먹어 갈 때쯤 다른 마트가 할인 바통을 이어받아 최저가는 인슐린처럼 항상성을 유지했다.

나의 다이어트는 배달앱을 지우고, 마트 할인 전단지를 펴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금연자가 주변의 담배를 치우듯 먹방을 보는 사람들은 관련 프로그램을 끊어야 할 것이다. 외부 자극 요인을 제거한 다음부터 의지와 타협해갔다. 적정 수준의 극기 지점을 찾는 것이다. 연예인이야 10kg 감량 같은 걸로 일반인 연봉을 한 달 만에 벌어들이겠지만 그들만한 유인동기가 없는 우리는 의지에게 많은 걸 기대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복원될 ‘건강’이다.

나는 하루 네 끼를 양보하지 않았다. 퇴근길의 치킨, 한여름의 냉면, 한겨울의 어묵 국물 수준의 맥락적 식욕은 갖고 있지만 맛 자체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은 아니다. 먹방, 맛집 문화에 무관심한 대신 허기는 잘 참지 못했다. 아침-점심-저녁-야식은 고정된 식생활 사이클이었다. 의지박약에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 야식은 출출함을 달래는 시리얼 정도로 조절했다.

다이어트는 칼로리 입출력의 단순한 산수다. 성인 남성 1일 권장 칼로리는 2400이다. 이보다 적게 먹으면 살은 빠진다. 나는 활동량이 적으므로 2200칼로리를 기준 잡았다. 하루 1800칼로리를 섭취하여 400칼로리의 이득을 보고 150칼로리의 운동을 더하면 550칼로리 감량을 적립할 수 있다. 7700칼로리가 1kg이므로 오차 감안해도 한 달이면 2kg은 안정적으로 감량된다. 사회생활 변수에 목표를 50% 할인해도 1년이면 12kg 감량이 가능하다.

문제는 하루 1800칼로리만 먹는 것이다. 야식에 300칼로리를 분배하면 한 끼당 대략 500칼로리를 먹어야 한다. 무슨 어쩌고 다이어트들은 효과적으로 끼니 당 섭취 칼로리를 줄여주지만 허기를 동반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허기를 참을 수 있다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애초에 제대로 된 의지란 게 있었다면 이런 몸뚱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끼니에 있어서는 정수가 묘수였다. 집밥에서 고기류만 빼면 500칼로리를 넘기기 어려웠다. 공기밥은 300칼로리다. 여기에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더해도 500칼로리가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걀 프라이 뺀 비빔밥이 최고의 다이어트식이다. 그러나 나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체재는 참치 쌈밥이다. 참치는 50g에 80칼로리가 안 되니 부담이 적다. 상추, 호박잎, 양배추를 돌아가며 기본 쌈으로 삼고 양파, 오이, 당근, 풋고추, 미나리, 각종 버섯, 돌나물, 치커리, 다시마 등을 넣어 먹었다. 채소량을 늘리고 늘려 밥 한두 숟갈 정도를 줄일 수 있다. 포만감이 오래 갔다. 재료 준비가 귀찮으면 콩나물, 시금치를 데쳐 밥과 2:1~3:1 수준으로 섞어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어도 괜찮았다. 가끔 두부나 고구마를 끼워 물림을 예방했다. 여기에 하루 땅콩 15알이면 지방의 영양 균형까지 맞출 수 있다.

의지는 갈고 닦는 게 아니라 달래서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 나는 운동도 싫어한다. 기계와 법치의 시대에 자발적 근육 혹사는 시간 낭비라는 게 운동에 대한 내 태도다. 그나마 유산소 운동에는 저항감이 덜했다. 10만 원대 실내 자전거를 사서 어차피 보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며 페달을 굴렸다. 한때, 『왕좌의 게임』은 내 최고의 다이어트 보조제였다. 운동 자체의 감량 효과는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삭감한 칼로리인데 고작 과자 하나로 탕진할 수 없다’는 억울함 때문에 칼로리 섭취가 버텨졌다.

또 하나의 의지 키우는 방법은 체중 그래프 작성이었다. 화장실 문에 매일 아침 체중을 기록하는 선 그래프를 그렸다. 몇 백 그램씩 빠졌다는 것을 사실로서 알고 있는 것과 변화 궤적을 가시적으로 틈틈이 확인하는 것은 체감도가 달랐다. 그래프는 파도는 치지만 한두 주 지나면 우하향을 그리게 되고, 그때쯤 되면 치킨보다 우하향 그래프의 관성이 달짝지근해진다. 치킨을 참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갖고 싶은 그래프에 대한 선호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식단과 적당한 운동, 애초에 삶의 필수 영양소였다. 특이 체질이 아닌 한, 비만은 삶의 영양 결핍인 셈이다. 그것이 내 탓이든, 외부 압력 탓이든 몸은 반드시 책임졌다. 그러고 보면 몸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학생의 성적, 직장인의 성과, 심지어 인간관계에서도 노력은 결과를 번번이 배신한다. 그러나 몸은 내 노력을 온전히 반영한다. 또한 자유의지라는 것도 법, 도덕, 관습을 따라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내 마음 같지 않은 걸 감안하면, 내가 자유롭게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몸이기도 하다. 내가 자율적 주체임을 증명하는 가장 만만한 방법이 다이어트인 것이다.

각자의 삶만큼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이 있다. 비만은 무너진 삶의 증명이니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아끼려는 마음에서 다이어트가 시작될 것이다. 단, 작심삼일의 의지를 믿지 말고. 올 여름 습관에서 자유를 꺼내 먹으며 어떨까.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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