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청년칼럼=최미주]  “바로 그거야. 나는 그 사람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됐는데 상대는 아니라는 거. 나도 일하고 당연히 똑같이 피곤하지. 나라고 안 쉬고 싶겠냐? 그래도 보고 싶으니까 주말마다 고속버스 타는 게 행복하더라.”

올해 설날, 작년부터 연애 시작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고향 떠나 가족, 친구도 자주 못보고 타지에 혼자 있는 친구라 신경이 쓰였다. 외로움 많이 타는 그녀에게 남자친구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힘들어 하고 있다니 맘이 편치 않았다.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학원을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는데, 어느새 명절 아니면 친구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여동생이나 언니가 없는 우리는 자매 있는 애들을 부러워하며 서로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 마음 나눌 시간이 줄어 우리의 외로움이 더 커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몇 번 못 받은 게 맘에 걸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픽사베이

“며칠 전엔 일이 너무 힘들었거든. 그래서 위로 좀 받으려 전화했더니, ‘힘내. 그럼 나는 운동하러 갈게.’ 이게 말이 되냐? 회사에서 하루 종일 기분 좋다가도 걔랑 전화하면 이상하게 힘이 풀려. 차라리 혼자가 나은 것 같아.”

그녀의 연애 고민은 이어졌다. 성향이 비슷한 편이라 친구의 답답함이 얼마나 클지 쉽게 예상됐다. 우리는 한 번 사랑하면 모든 에너지, 감정,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아 붓는 ‘사랑꾼’이었다. 그래서 표현에 서툰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무심함으로 느껴 상처받곤 했다. 행복하려고 하는 연애가 왜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지.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몇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역시 ‘친구가 최고’라며 전화를 끊었다.

“야, 나 헤어졌어. 나 생일 선물도 못 받은 거 알아? 내가 받고 싶었던 건 핸드백, 지갑? 아니야. 하다못해 길거리에 파는 머리핀이라도 괜찮았어. 20대 마지막 생일이라 의미부여 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냥 남자친구가 주는 무언가가 필요했어. 그게 뭐든.”

친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고 헤어질 건 또 뭐냐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말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다 얘기 했고 많이 참고 내린 결정이라 답했다. 한 달이나 기다렸는데 결국 허무하게 20대 마지막 생일이 지나가버렸다고. 바람 다 빠져 가는 풍선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자신이 얼마나 슬펐는지 아냐며 끝내 통곡했다. ‘바람 다 빠져 가는 풍선’이라. 바람 다 빠져 가는 풍선을 손에 쥔 그녀 모습을 상상했다. 더 이상 바람 불 힘도 없이 쳐져 가고 있었다.

누구나 풍선을 불고 터뜨려 본 경험쯤 있을 거다. 어릴 땐 풍선 부는 게 정말 힘들었다. 볼이 빵빵 터지도록 숨을 뿜어 봐도 헐떡대기만 하고 고무는 부풀 지 않았다.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이루어 질 수 없는 짝사랑 같다.

힘겨워하는 딸에게 아빠는 손 펌프를 건넸다. 신나게 펌프질을 하다 그만 풍선이 터져 한참을 울었다. 첫사랑도 그렇다. 터질 거란 걱정 없이 온 마음 쏟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큰 풍선을 만든다. 사랑의 크기를 감내하기 힘든지 예고 없이 풍선이 ‘펑’하고 터진다. 풍선 크기만큼 상실감과 후유증도 상당하다.

딸이 우는 모습이 안타까운 아빠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초반에 아빠가 일정 부분 바람을 넣어 주면 내가 이어서 풍선을 부는 거다. 조금 부풀어진 풍선은 상대적으로 불기 쉬웠다. 두 번째 사랑은 그렇게 반쯤 부푼 풍선처럼 찾아온다. 상대가 함께 만들 풍선을 들고 나타난다. 또 터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조금씩 더디게 바람을 불어 넣는다.

어느 정도 바람이 들어간 풍선 입구를 손으로 꼭 쥐고 아빠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이번엔 매듭 짓는 게 문제다.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고 바람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랑은 첫 번째 풍선처럼 터지지 않았다. 단지 바람이 빠졌다. 고무 입구를 힘껏 잡고 버티고 있었을 친구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 감정이입이 더 잘 됐다.

무엇이 문제일까.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일부러 늦게 왔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친구의 전 연인은 어떤 마음으로 친구를 내버려 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속도의 차이일까. 터지고, 바람 빠지면서 그렇게 사랑을 배워 가는 걸까?

당분간 친구는 풍선을 불기 힘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다시 풍선을 손에 쥔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터지지 않는 풍선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크고 오래가는 풍선을 만들 수 있을까? 풍선 잘 부는 법을 제시해 본다.

<풍선 사용 설명서>

1. 무책임하게 풍선을 건네지 말 것.
2. 바람 부는 상대가 힘들지 않는 지 끊임없이 점검할 것.
3. 상대의 속도를 맞춰 함께 호흡할 것.
4. 상대가 혼자 오랫동안 풍선을 들고 있게 하지 말 것.
5. 함께 매듭 지을 것.

매듭 지은 풍선이 터지면? 함께 다시 새로운 풍선을 만들어 가면 된다. 하루 빨리 그녀에게 풍선 잘 부는 누군가가 찾아오길 바란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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