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나주기행]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쪽빛의 고을, 나주에 다녀왔습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에서 진행된 ‘천년의 빛깔 쪽빛을 물들이다’ 공개 체험행사엔 무더운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100여명의 동호인들이 몰렸습니다.  환경친화적인 전통 쪽염에 대한 일반의 관심들이 부쩍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쪽염색을 설명하는 정관채 염색장(사진 가운데)@동이

나주는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의 풍부한 물과 기름진 토양, 따뜻한 기후로 일찍이 양잠과 면직물이 발달해온 곳입니다. 특히 다시면은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리적 환경 탓에 잦은 홍수피해로 농산물 수확이 어려워 예부터 대체작물로 쪽을 많이 재배했습니다. 쪽염이 한창 성업을 이뤘던 1900년대 초 영산포 선착장에는 전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 쪽 염료를 구입하러 오는 상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합니다. 광복 전까지만해도 쪽물로 들인 아청이불은 혼수품으로 꼭 갖고 가야 할 인기품목이었습니다.

쪽은 람(藍)이라는 풀 이름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색소를 이용하는 전통염색이 쪽염. 청출어람(靑出於藍/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뜻)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한 까닭도 청색(靑)이 쪽에서(於藍) 나오지만(出) 풀 색깔보다 더 푸르기 때문입니다.

연녹색을 띠며 자라고 있는 쪽@동이

“천연염색 중 쪽색은 다른 색과 달리 자연상태에서 바로 재현할 수 없습니다. 쪽풀에서 추출된 색소성분에 소석회를 첨가해 만들어지는 염색원료 니람(泥藍)을 수용성으로 전환시켜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살아있는 미생물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에 오랜 시간과 노력, 전문적 기술이 필요해 그만큼 높게 평가돼왔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궁중에서 염색을 담당하는 염색장인을 둘만큼 쪽염을 중시했습니다~”(정관채 염색장)

정관채 선생(국가 중요무형문화재 115호)은 전통 쪽염색 방식을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쪽 염색장(染色匠)입니다. 다시면 샛골마을에서 태어나 증조부 때부터 4대째 쪽염색을 가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교직(나주 영산고 미술교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조선의 색’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아래 쪽 농사를 짓고 쪽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통 쪽빛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가까이서 보니 전통 쪽 염료를 만드는 과정은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7~8월 쪽의 꽃대가 형성되면 쪽을 베어 대형 항아리(200~250l)에 차곡차곡 넣고 그 위에 돌을 얹은 뒤 깨끗한 물로 가득채워 24시간 삭힙니다. 하루 정도 지나면 색소가 잎에서 분리되고 이때 쪽대를 건져냅니다. 색소물에 소석회(굴껍질 등을 태워 얻은 석회)를 넣고 힘차게 항아리 속을 횟대로 젓습니다. '중노동' 횟대작업이 끝나면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며 침전물이 만들어 지는 데, 이 앙금이 진흙같다 해서 니람(泥藍)이라 불립니다. 소석회는 겨울철에 굴껍질을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30시간 정도 구워서 만들어놓습니다. 이 니람에 콩대 등을 태워 얻은 잿물을 적정비율로 섞어 발효시켜야 염료로 쓸 수 있는 ‘꽃물’이 만들어집니다.

천을 꽃물에 담가 물들이는 일은 전체 과정의 10분의 1 정도로 짧습니다. 쪽을 심고 베어 니람과 꽃물을 만드는 일이 매우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쪽염을 한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기를 반복하면 짙은 색이 나옵니다. 처음 꽃물에 염색했을 땐 연녹색을 띠다가 공기 중에 펼쳐지면 점차 녹색·파랑으로 변하며 '본색'을 드러냅니다.

행사 참가자들이 쪽으로 물들인 체험작 1@동이

“천의 윗 부분을 쥐고 물에 담근뒤 짜세요. 그리고 꽃물에 담갔다가 살짝 들어올려 보세요... 꼬옥~ 짜서 곱게 펼쳐야 됩니다...”  정관채 선생의 설명대로 따라 해보니 나름 '멋진 작품들'이 나옵니다.

행사 참가자들이 만든 쪽염색 작품 2@동이

쪽밭에서 따온 쪽잎을 갈아 얼음물을 이용해 바로 염색하는 생쪽염색 시연도 있었습니다. 세모시 옥색이 바로 발현됩니다.(사진 아래)

생쪽으로 염색하고 있는 참가자들@동이

“쪽색이 제대로 나오려면 쪽을 심어 풀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 과정에 지극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면 만족할만한 색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정관채 염색장)

쪽빛은 ‘봄부터 겨울까지 과정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전통을 지키려는 장인의 고된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쪽빛 모시를 보고 김지하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아! 그 모시의 쪽빛을 무어라 표현했으면 좋을까.

한 바다였고 깊고 깊은 가을 하늘이었다...

나는 정신을 잃고 보고 또 보곤했다...

그 빛깔, 그 감촉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나는 한 마디밖에 모른다.

꿈결!’

시인의 시어(詩語)처럼 1박 2일간 꿈결에 쪽빛을 만난듯 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