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쇼!사이어티]

[청년칼럼=이성훈] 인류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을 꼽으면 아마도 삼국지일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삼한의 태동이 꿈틀거리던 시절, 중국 대륙에서는 유비, 조조, 손권이라는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 수 천 년 지난 역사가 동양에서는 ‘삼국지’, 서양에서는 ‘Three Kingdoms’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영화, 게임, 만화로 변주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역사란 것이 교과서처럼 분석해 들어가면 ‘노잼’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꿀잼’ 콘텐츠가 된다. 버전도 다양해서 펙트기반의 덤덤한 정사 삼국지가 있는가 하면, 야사 삼국지는 관우의 청룡언월도 한 방에 병사 30명의 목이 날아갔다는 둥 허풍이 가득하지만 흥미를 더한다. 비슷한 이유로 다 큰 어른들이 중-고교 교과서 내용은 다 까먹어도 이순신과 김유신이 등장하는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는 아직도 흥얼거리는 게 아닐까?

이러한 인물중심의 역사관은 자연스럽게 현대로도 넘어온다. 한중일미러 등 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가 얽힌 요즘의 국제뉴스는 ‘현대판 삼국지’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트럼프, 아베, 김정은, 푸틴 등 각국의 대표들을 각 나라의 주인공 삼아서 그들의 개성 넘치는 에피소드나 어록을 모으고, 그것들을 통해서 국가 간의 우호관계나 국력을 가늠하는 식이다.

예컨대 트럼프는 호두 으깨듯 강력하게 악수를 청해서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걸로 유명하고, 아베는 강국에게는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하되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지도자에겐 악수만 스치듯 하고 깔보는 성품이더라, 푸틴은 약속시간에 최소 1시간은 늦는 거만한 성격이더라 식이다. 물론 다소 과장된 인물평이지만, 나름 각 나라의 국력과 외교 방식을 어느 정도 담아낸 것 같아서 참조할 만하다. 그렇다면 문재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그 평가는 또한 대한민국의 세계 속 위상을 잘 드러내는 것일까?

Ⓒ청와대

국내 언론들의 문재인 인물평은 상당히 야박한 듯하다. 포털 자동검색어에 먼저 뜨는 것은 ‘문재인 홀대론’이다. 아베가 악수 10초만 나눴을 뿐 별 대화도 나누지 않았더라, 푸틴이 문재인과 오찬 약속을 해놓고 2시간이나 늦더라, G20회담 주최측이 문재인만 수행원을 덜 붙여주는 바람에 갑자기 내린 비 속에서 각국 정상 중에 유일하게 직접 우산을 쓰더라, 라는 식이다. 그런데 펙트체크 해보면 대부분 홀대론은 사실과 달랐다. 푸틴의 지각은 G20 의전이 늦어지는 바람에 각국 지도자들 모두가 감수해야 했던 해프닝이었고, G20현장의 소나기는 워낙 갑작스런 것이어서 트럼프나 터키, 베트남 대통령 등 각국 정상 여럿이 직접 우산을 들고 다녔다.

결국 문재인을 홀대한 것은 다름아닌 역사의 기록자인 저널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펙트의 일부분만 캡쳐하고 확대해버렸다. 문재인을 홀대하고 싶은 마음이 기사에, 현장 사진에 투영된 것이다. 야사의 작가들은 누군가는 천하의 영웅으로, 누군가는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현대 역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들도 야사를 쓰고 있다.

인물로 역사, 외교를 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펙트, 교차검증을 핵심으로 하는 저널리즘에서 야사가 발견된다면 곤란한 일이다. 이 때문에 기록 너머에 담긴 기록자의 욕망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현대인들에게 요구된다. 이렇듯 독자도 기록자도 치열한 심리전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현대판 삼국지도 제법 보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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