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설왕설래되던 조문문제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정부나 국회의 조문단 파견 요구가 쏟아졌었다. 안되면 민간조문단이라도 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무현재단에서는 직접 파견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정부는 북한 주민에 위로의 뜻을 표했다. 정부 조문단을 보내지 않음은 물론이고 민간조문단 파견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 현정은 여사의 경우 북한의 조문에 대한 ‘답례’를 위해 직접 조문하는 것을 허용했다.

야당은 21일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회동이나 22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과 양당대표 회동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정부의 애초 방침은 그대로 유지됐다.

다행스런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정부나 야권이 나름대로 논리를 펴면서 주장을 하면서도 무조건 상대방을 매도하거나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무조건 ‘된다’ 또는 ‘안된다’고 자르기 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는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조문단 파견요청에 대해 무조건 안된다고 쳐내지 않았고, 북한에 대해서도 ‘억제된’ 수준의 조의를 표시한 것이다. 야당도 조문단을 파견하자는 주장과 요구를 제기하면서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 보수단체도 김정일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 ‘환영’ 집회를 열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에 따라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벌어졌던 조문파동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서로 자제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수나 진보 모두 지금 몹시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가뜩이나 불안해 보이는 정세를 더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남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미워하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고, 그럴 이유도 충분하다. 그러니 야당과 진보세력도 감정적인 조문 요구를 너무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22일 청와대 회동에서 이런 점을 들어 야당을 설득하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당이 이런 설득을 수용하든 하지 않든 분명한 사실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미운 감정만 갖고서는 남북한 관계가 풀릴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제는 화해를 위한 몸짓이 정말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 조의 혹은 위로를 표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이치이다.

 조의든 조문이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향후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북한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특히 우선 우리 남한이 평화롭게 살고 번영을 계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대응은 적절하고, 야당의 자세도 평가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이제 한반도에서 분쟁의 핵심 당사자들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서로 미워해야 할 직접적인 이유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화해가 더 유리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한반도는 이제 분쟁의 낡은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부와 야당, 보수나 진보를 불문하고 이런 시대의 변화 앞에서 좀더 냉정하고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야당이나 진보세력은 요구사항을 한꺼번에 관철하려 하지 말고, 정부와 보수세력도 마음을 닫지 말고 조금만 더 열면 된다. 모두가 절제하면서 차분하게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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