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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뤄주는 ‘지니’가 내 반쪽이라면[도영인의 정화수]
도영인 | 승인 2019.07.16 10:49

[논객칼럼=도영인] 자신의 배우자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에 “my better half”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훌륭한 나의 반쪽, 내 인생의 배필이란 말이다. 음양의 조화를 논하는 동양철학 영향권 속에 있는 한국에서도 자기 부인이나 남편을 이 정도로 긍정적으로 추켜세우는 표현은 들어보지 못했다. 남녀가 일심동체로 한 마음이 되어 우주의 중심과도 같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상대방을 자기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순수 우리말에 아내라는 말은 원래 집에 있는 , 즉 한 가정의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의 부인을 아내로 지칭하는 멋진 남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우리 안 사람 혹은 집사람이란 말을 많이 쓰고, 젊은 청장년층에서는 ‘프’ 발음이 강한 와이프(wife)란 말을 한다. 자기 나라에서 원래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민의 귀에는 닦는다(wipe)는 소리로 들릴 테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집에서 걸레 들고 청소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기 부인을 와이프라고 부르는 한국 남편들은 없을 테지만, 어쩌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내치고 족보에도 없는 외래어를 스스럼없이 너도나도 쓰게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영화 ‘알라딘’ 스틸컷 Ⓒ네이버영화

최근에 개봉한 알라딘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요술램프에서 풀려나온 지니라는 이름의 노예는 초현실적인 강력한 힘을 행사하며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룰 수 있는 최상급 인공지능로봇과도 같은 존재이다. 지니에게는 자신을 캄캄한 램프 밖으로 불러 내 준 은혜로운 주인이 원하는 소원 세 가지를 이룰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다. 그런 마법의 힘을 가진 노예를 누군들 탐하지 않겠는가!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알라딘이 놀랍게도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소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쓰는 대신에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지니에게 영원한 자유를 선물하는데 써버렸다. 자기보다 훨씬 더 나은 능력을 가지고 충직하게 자신을 도와준 지니에게 주인행세를 하게 된 알라딘은 지니를 그만큼이나 사랑했고 그가 맘껏 행복해지기를 원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심도 깊은 이해심과 진정한 배려심을 보이는 일은 현란하고 허황된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현실에서도 치매 걸린 남편이나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끝까지 손수 수발드는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영화관에서 나와 집까지 걷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나에게 지니같은 존재가 주어진다면 내가 그에게 부탁하고 싶은 가장 간절한 세 가지 소원은 무엇일가? 나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우선 미세먼지를 포함하는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으로는 질병, 배고픔, 사고, 폭력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숙명처럼 견디면서 살아가는 모든 종류의 고통들도 이 세상에서 말끔하게 지우면 정말로 행복해지겠다고 생각했다. 대규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소원들을 비록 가상세계에서나마 아주 효과적으로 선물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느낌마저 드는 듯 했다. 보통 사람이 해결해 낼 수 없는 지구차원의 골칫거리 문제들을 지니라는 가상적 노예의 마술적인 힘으로 푸는 셈이니 두고두고 만족할만한 소원풀이 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지니에게 부탁할 수 있는 한 가지 소원만 남았는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심사숙고해서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예상치 않게 퍼뜩 지나치는 생각에 내 의식이 한 순간 머물렀다. 만약 ‘나보다 나은 나의 반쪽’되는 사람이 세상 어느 구석엔가 있다면, 아니 저 세상에서라도 데려올 수 있다면... 지니는 그런 소원까지 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 나이든 노년층에서 유행하는 ‘졸혼’이라는 말은 자기의 배우자가 ‘나보다 나은 나의 반쪽’이라는 가능성을 은연중에 완전히 포기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구태여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이혼율을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노년에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금실 좋게 사는 부부의 모습은 찾기 힘들게 된지 오래이다.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를 거듭해 온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사회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권력욕에 찌든 정치인들이 公益(공익)과는 무관하게 사회혼란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지극히 염려스러운 현상을 예로 들자면, 부모들이 자식의 교육이나 진로방향은 물론이고 심지어 결혼상대 선택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이든 자기가 정성으로 키워 성인이 된 자식이든 간에,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대가 원치 않는 영향력 내지 통제권을 행사할 때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성립되기 힘들다.

사랑이나 책임성의 이름으로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아니면 “국가안정과 안보를 위하여...,”를 남발하면서 소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독재적인 어른들이 너무도 많다. 민주공화국 사회경제제도 아래에서 공식적인 노예제도는 없지만 아직도 자신의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일터에서 갑질(!)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미성숙한 인격체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노예처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지니같은 존재가 현실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듯이 자기보다 못나거나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홀대하거나 학대까지 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조차 지니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주인이 생겨나는 판에 갑질 관련 뉴스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모든 면에서 내 뜻대로 따르고 나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마치 머슴이나 하녀같이 무조건 순종적으로 행동하는 배우자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동기에서 나온 모든 행위는 타율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노예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벌써 잘 알고 있다. 그런 반면에, 타인을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여기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한국사회가 직면한 참담한 현실을 앞으로 어떻게 끌어안고 나갈 것인가? 끝내는 남편을 토막살인 하는 괴물 아닌 괴물여자(!)까지 생겨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어른들이 어른행세를 하고 아이들 얼굴을 쳐다볼 수 있겠는가?

어린 초중고학생들이 학교에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동료학생에게 억지로 심부름을 시키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왕따를 시키는 것은 나쁜 ‘짓거리’하는 주변의 못난 어른들한테서 해로운 영향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스스로 남보다 나은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 조건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어른들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인내천(人內天) 사상을 탄생시킨 정신문명이 빛나는 역사배경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이제 인간평등과 홍익인간이념을 다시 한국인답게 '빨리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혼을 한 사람의 경우에 자기 배우자가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는 아름다운 시각을 갖고 있고 그래서 상대방을 존경하고 산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大我(대아)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인 小我(소아)와 함께 내 안에 숨겨져 존재하는 大我(대아)를 스스로 감지하고 일깨울 수 있다. 비록 평소에 소아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배우자나 다른 사람을 습관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낮게 평가하려는 충동을 알아채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면 된다. 사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을 제외하고 부부나 형제간에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관대함이 없고 자기 패배적으로 빈약한 자아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우하기는 쉽지 않다. 

결혼율과 신생아 출생률이 최하인 대한민국에 사는 필자가 자기 아내를 ‘나보다 나은 내 반쪽’으로 보고, 남편을 자기보다 훨씬 더 배울 점이 많은 배우자로 대우하며 사는 사회적 변화를 그려보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바램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영국 가수, 존 레논이 부른 Imagine(상상해 보아요)이라는 노래가사와는 달리, 필자는 막연하게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는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소박하게 바라건대, 배우자가 되었든 생판 모르는 남이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하는 사랑에너지가 넘치는 세상을 그려본다.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지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롭게 함께 잘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지니는 이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누구나 각자 어두운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이 신비로운 영혼의 반려자가 세상 빛을 볼 수 있도록 깨워 내기만 하면 된다. 참된 내 모습으로 내안에 숨겨져 있는 강력한 大我(대아)가 小我(소아)적으로 행동하는 평소의 나보다 훨씬 훌륭한 내 인생의 파트너이다. 누구나 막론하고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 되었든, 진정한 의미에서 나보다 훨씬 나은 나의 반쪽 반려자는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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