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논객칼럼=황인선] ‘혁신(革新)’,요 단어! 쓸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 쓸 수 없을 듯하여 다시 쓴다. 이 단어는 J.슘페터, 피터 드러커 등의 주문에서 발원하여 우리 사회에 대량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 20년은 족히 되는 연배의 단어다. 나로서는 1996년 숙명여대에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슬로건부터 2004년 서태지와 상상체험단 프로젝트, 온-오프라인 상상마당, 문화마케팅, 2010년에 미래혁신팀을 맡기까지 은연 중 이 단어와는 인연이 많은 편이었다.

혁(革)은 단순히 가죽을 의미하는 피(皮)와는 달라서 ‘손으로 가죽을 펴는’ 것을 지시하는 문자다. 거기에 신자가 붙었으니 뭔가 늘 다르고 새롭게 하라는 요구를 담게 되는데, 실상 혁신은 마차 가득히 짐을 실은 소의 길과 같아서 바퀴는 그 엄한 무게에 눌려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고 수렁에도 쉽게 빠진다.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작 구경만 하고 훼방 놓기가 일쑤다. 나로서는 애증의 단어다. 그래서 혁신이라는 말을 내 용어사전에서 멀리 빼놓았었는데 OMG! 피하면 더 온다더니... 서울혁신파크 내 서울혁신센터 센터장 직을 맡게 되었다.

서울혁신파크 전경.

탄생 그 자체로 혁신인 공간

은평구 불광역 사거리에 서울혁신파크가 있다. 산을 포함하여 부지 3만 평, 주요 건물만 10여 동 이상에 활동가 2000여 명이 거하고 있다.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쓰던 건물이라 노후한 상태지만 그 노후 자체가 히스토리며 시그니처 콘텐츠다. 그 공간을 당장 돈 되는 주상복합으로 개발하지 않고 혁신파크로 만든 것 자체가 이미 서울시의 혁신이었다. 그 공간은 광역도시에 산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스타트업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 목적)와는 지향이 사뭇 다르다. 오히려 미국, 유럽의 리빙랩(Living Lab)과 지향이 겹친다. 리빙랩은 ‘살아있는 실험실’, ‘우리 마을 실험실’ 등으로 해석되며, 사용자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참여형 혁신 공간이다.

3년 전 처음 파크에 갔을 때 기존 건물, 공간들과는 전혀 다른 아우라, (혹은 테르와)에 많이 놀랐었다. 발상 자체가 다른 공간이었다. 청년허브,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 등 다수의 중간지원조직이 입주해있고 130여 입주사들은 서울혁신센터가 관리 및 지원하는 미래청, 상상청, 팹랩, 맛동, 비전화공방 (전기를 일체 쓰지 않는 실험적 공방)등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서울기록원이 입주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2018년 리모델링한 상상청은 미래청과는 아우라가 또 다르다. 연결동 느티나무 홀, 공유동, 연수동과 연결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청년, 허브, 사회적, 미래, 상상, 연결, 팹&랩, 리빙, 공유... 이들 이름은 뭔가 결핍된 우리를 위한 대안 언어로 꼽히는 것들이다.

서울혁신파크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앎.꿈.함의 커뮤니티로

이름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서울혁신파크는 다음의 두 가지 뜻으로 읽힌다.
1. 서울을 혁신하는 파크
2. 서울에서 한국을 혁신하는 파크

그건 전국 1번지 서울의 위상을 볼 때 1단계, 2단계로 가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전국에서 꽤 많은 지자체, 단체들이 방문, 연수를 한다. 그런데 이름에 파크가 들어갔지? 파크는 잠시 쉬어 가는 곳인데 이곳은 아무리 봐도 쉬어가는 곳이 아니다. 혁신을 기치로 하여 수천 명의 다양한 세력들이 모여 혁신을 공부하고 꿈꾸고 실천하며 갈등하고 소통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마을 또는 커뮤니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앎.꿈.함 3합의 마을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100여년 이상 자본주의가 세계에 준 선물은 많았지만 반면 훼손된 환경, SKY 캐슬 교육, 편리와 속도만 탐하는 욕망의 도시, 무너지는 평등, 파괴된 공동체 가치 등을 반대급부로 주었고 이에 이들 가치를 1M라도 회복(Resilience)시키려면 인본에 기초하여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건강한 앎, 가슴 두근대는 꿈, 진정성 있는 함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누구는 이들이 진부하다고 할 것이다. 4차 산업 테크, AI, VR/MR, 블록체인, 어마무시한 유니콘 등의 시대발광(發光)이 너무 화려하고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광하는 시대는 자칫하면 발광(發狂)하여 삶의 정언을 잊게 만들어 미치게 하기 쉽다. ‘생각하지 않는 앱 제너레이션’, 거북목, 3미터 인간, 1%:99%... 등의 저주가 이미 나왔다. 이럴 때 다시 ‘도대체 뭐가 중한디?’를 따져야 한다. 혁신파크는 진지하게 그것을 되묻는 공동체다. 우리의 로망 국가 중 하나인 뉴질랜드는 사실 가정폭력, 아동빈곤, 홈리스와 자살률 증가, 마오리 원주민 공동체 파괴 등의 어두운 그늘이 만만치 않았는데 감성 넘치는 30대 총리 저신다 아던이 드디어 GDP의 성장에서 ‘행복증진’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그런 혁신의 일환이다.

어떤 용어는 시대가 지나면 빛을 잃거나 왜곡된다. ‘우리’, ‘새마을’, ‘성공’이 그렇다. 반면 더 생기가 도는 용어도 있다. ‘웃음’, ‘이야기’, ‘행복’ 등이 그렇다. 혁신이라는 말이 어떻게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일단 혁신은 무겁고 피곤하고 무서운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혁신이 박제가 되었다. 그러니 여기에 리빙, 웃음, 이야기, 배려를 콜라보하면 어떨까?

 황인선

현 서울혁신센터장. 경희 사이버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KT&G 미래팀장, 제일기획 AE 등 역임. 컨셉추얼리스트로서 마케팅, 스토리텔링, 도시 브랜딩 수행. 저서 <꿈꾸는 독종>, <동심경영>,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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